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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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삼승을 위해 차례대로 금 같은 말씀을 설하신 것은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12-18 22:43
조회
2623

삼승을 위해 차례대로 금 같은 말씀을 설하신 것은


삼세(三世)의 여래가 다 같이 말씀하신 것일세.


처음엔 유(有)와 공(空)을 말하니 사람들이 다 집착하더니


뒤엔 공도 유도 아니라 하니 모두 다 버려버렸네.



三乘次第演金言 (삼승차제연금언)


三世如來亦共宣 (삼세여래역공선)


初說有空人盡執 (초설유공인진집)


後非空有衆皆捐 (후비공유중개연)



∴   십현담(十玄談) 5-1에서 동안 상찰 (?~961) 스님 말씀입니다.






가르침에는 여러 방편이 있다.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세존의 팔만사천 법문도 사람들의 근기에 따른 방편문이다.


삼승도 하나의 방편이다.


여기에서 승(乘)이란 사람이 타고 다니는 수레와 같은 것.


중생을 실어 깨달음으로 향하게 하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일승은 구제하는 교법이 하나뿐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삼승은 깨달음에 이르는 세 가지 실천법을 말한다.


사람의 수준에 맞게 셋으로 나누어서 설한 것이다.



삼승에는 성문승과 연각승, 보살승이 있다.


성문승은 사성제와 팔정도를 닦아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는다.


연각승은 홀로 인연의 도리를 관찰하여 깨달음을 얻는다.


보살승은 육바라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다.



삼승의 가르침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이 설하셨다.


스님의 표현을 빌리면


그 가르침은 단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있다(有)’와 ‘없다(空)’, ‘있고 없음을 모두 버리다[皆捐]’이다.



부처님은 설하셨다.


“고통도 있고,


그 고통의 원인도 있고,


고통을 소멸한 경지도 있고,


고통을 소멸하는 길도 있다.”


그러다가 “이 가르침은 모두 공하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상반된 말에 다 집착하였다.


사람들은 ‘있음’에 집착하는 것이 병이라는 안다.


그러나 ‘없음’에 집착하는 것도 역시 병이다.


그것은 ‘있음’에 집착하는 것 이상으로 깊은 병이다.


‘없음’은 ‘있음’에 대한 집착을 치료하는 데 특효약이다.


‘없음’에 대한 집착도 심한 고통이 된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줄곧 ‘없음’에 집착하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다시 설하셨다.


세상의 모든 존재의 실상은 ‘없음’도 ‘있음’도 아니라고.


‘있음’과 ‘없음’도 다 버려라.


‘있음’과 ’없음‘ 걸리지 마라.


그 둘을 자유롭게 쓰는 중도적인 삶을 살아라.



(무비스님 해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