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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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본래 자리로 되돌아가서 근원에 돌아오는 일이 이미 틀렸으니..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12-22 09:52
조회
2684


본래 자리로 되돌아가서 근원에 돌아오는 일이 이미 틀렸으니


본래 머무는 곳이 없어 집이라 이름하지 못하네.


만년의 솔밭 길에 눈마저 깊이 덮였고


한 자락 긴 봉우리에 구름 다시 가려 있네.



손님과 주인이 화목한 시절이라도 온전히 망상뿐이요,


임금과 신하가 자리를 같이해도 올바름 가운데 삿됨이어라.


고향에 돌아왔으니 곡조를 어떻게 부를까.


달 밝은 집 앞 마른나무에 꽃이 피었구나.




返本還源事已差 (반본환원사이차)


本來無住不名家 (본래무주부명가)


萬年松徑雪深覆 (만년송경설심복)


一帶峰巒雲更遮 (일대봉만운갱차)



賓主穆時全是妄 (빈주목시전시망)


君臣合處正中邪 (군신합처정중사)


還鄕曲調如何唱 (환향곡조여하창)


明月堂前枯木花 (명월당전고목화)



∴   십현담(十玄談) 7에서 동안 상찰 (?~961) 스님 말씀입니다.







불교란 깨달음의 가르침이다.


깨달은 사람은 깨달음의 내용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선불교에서는 이 경우 ‘고향에 돌아간다.’


또는 ‘근원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동안 전혀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수 억만 겁 이전부터 이미 있던 것을 되찾는 일이다.


그것도 멀리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 것을 되찾는 것이다.



본래 지니고 다니던 것을 찾는 일이 녹녹치 않다.


세존(世尊)의 6년 고행


달마의 9년 면벽이 필요했다.



어떤 이는 원주라는 소임을 십 년이나 살았고,


장경(長慶, 856~932) 스님은 방석을 일곱 개나 떨어트렸으며,


향림(香林, 870~949) 스님은 40년 만에 일편(一片)을 이루었다.


한 생애를 송두리째 집어 던진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스님은 “만년의 솔밭 길에 눈마저 깊이 덮였고


한 자락 긴 봉우리에 구름 다시 가려 있네.”라고 하였다.


너무나 운치 있는 표현하였다.


그 말 속에 감춰진 난행과 고행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사연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와 노래하였다.


“달 밝은 집 앞 마른나무에 꽃이 피었구나.”



(무비스님 해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