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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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텅 빈 문으로는 기꺼이 나가지 않고..

작성자
hhhh
작성일
2019-06-29 13:33
조회
1805


텅 빈 문으로는 기꺼이 나가지 않고


창문에 가서 부딪치니 너무 어리석도다.


백년을 옛 종이만 뚫은들


어느 날에 벗어날 기약이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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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門不肯出 (공문불긍출)


投窓也大痴 (투창야대치)


百年鑽古紙 (백년찬고지)


何日出頭期 (하일출두기)



∴   선요에서 고봉 원묘 스님 말씀입니다.







이 시는 제자가 스승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이야기이다.



중국 당 나라 때 고령사에 신찬 스님이 있었다.


출가하여 고향의 대중사라는 절에서


은사스님인 계현 법사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다가 백장 회해 스님 문하에 가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돌아온다.


말도 없이 예전처럼 시봉을 하는데


하루는 은사스님의 목욕에 때를 밀게 되었다.


때를 밀다가 등을 어루만지면서 하는 말.



“법당은 참 좋구나.


그런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라고 하였더니


은사스님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신찬은 다시,


“영험도 없는 부처가


또한 방광은 할 줄 아는구나”라고 하였다.



좋은 법당이란 육신을 두고 한 말이다.


영험이 없다는 것은 깨달음이 없다는 뜻이다.


출가수행을 하고 큰 깨달음을 이룬 뒤


사람들을 제도하는 것이 승려의 본분이다.



그런데 산중에 깊이 들어앉아


적당하게 독경하고 염불하면서


하루하루 일상적인 신행생활로서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여기고 산다면


눈을 뜬 사람에게는 참으로 하찮게 보였을 것이다.



그 문제에 스승과 제자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만 법에 대한 진정한 눈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


지상의 과제일 뿐이다.


그래서 스승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리고 경책하는 마음에서


은사스님의 몸을 어루만지며


“법당은 참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라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승은 귀가 있어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쳐다 볼 줄을 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영험도 없는 부처가 어찌하여 방광을 하는가.


바로 이 점이다.


이 점이 방광이며 영험이다.


방광하는 능력, 그것은 무엇인가.


말을 하면 말을 들을 줄 아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불가사의하다.


은사스님은 다소 어리둥절하였으나


무슨 뜻이지를 모르고 목욕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며칠을 지났다.



그 후 얼마가 지난 어느 날 은사스님이


햇빛이 밝게 비치는 들창문 밑에서


한쪽의 창문을 열어놓고 경전을 읽고 있는데


마침 그 순간 벌이 한 마리 방에 들어와서


열려있는 문으로는 나가지 않고


닫혀있는 종이 창문에 가서


밖으로 나가려고 계속하여 부딪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상좌 신찬스님이 시를 한수 읊었다.


그것이 위의 게송이다.



은사스님은 이 게송을 듣고 그 때에야 심상치 않은


상좌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백장스님 문하에서 눈을 뜨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현스님은 곧 바로 대종을 쳐서


대중들을 모으고 법석을 마련하였다.


상좌를 법상에 올려 앉히고 자신은 밑에 앉아


제자가 되어 법문을 듣고서야 깨달음을 얻었다.



(무비스님 해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