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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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상에 머물러 보시를 하면 천상에 태어나는 복이 된다.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10-23 22:06
조회
2918

住相布施生天福 (주상보시생천복)


猶如仰箭射虛空 (유여앙전사허공)


勢力盡箭還墜 (세력진전환추)


招得來生不如意 (초득래생불여의)


爭似無爲實相門 (쟁사무위실상문)


一超直入如來地 (일초직입여래지)



상에 머물러 보시를 하면 천상에 태어나는 복이 된다.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아서


위로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도리어 떨어지고


내생의 사람이 여의치 못하다.


어찌 무위의 실상문에서 한 번 건너뛰어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과 같겠는가.



∴  증도가(證道歌)의 말씀입니다.






대개 복이란 밑 빠진 독과 같은 유루복이다.


왜 그런가 하면 모두가 상에 집착하여 복을 짓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복은 마치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위를 향해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내려오게 되어 있다.


내려오면 땅 속 깊이 꽂혀 화살이 망가진다.


삶이 여의치 못함을 불러온다는 말은 이러한 뜻이다.


복진타락하면 지금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그와 같은 복을 지을 필요가 있겠는가.


복을 지으려면 변하지 않고 새지 않는 무루복(無漏福)이어야 한다.



진정한 불교의 가르침은 무위이며 실상이고 공이다.


수행을 쌓거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생각 돌이켜서 눈을 뜨면 끝이다.


그야말로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이다.


진짜 불교는 이렇다.


일초직입여래지란 무엇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육도만행과 팔만 사천 방편에 의존한다.



그러나 깨달음의 노래인 증도가의 입장은 다르다.


미래에 올 가상의 자신의 모습은 허상이며 유위며 조작이다.


여래의 경지란 조작이나 미래에 올 허상이 아니다.


지금은 없으나 미래에 올 그 무엇도 아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보고 듣고 숨 쉬고 알고 느끼는 것이다.


그것을 알면 다 된 것이다.



(무비 스님 해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