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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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그대에게 묻노니, 마음의 도장이 어떻게 생겼는가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12-14 08:17
조회
2646

그대에게 묻노니, 마음의 도장이 어떻게 생겼는가.


마음의 도장을 누가 감히 주고 받을 수 있으랴.


한량없는 세월 동안 평탄하여 다른 모습 없는데


마음의 도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벌써 헛소리일세.


본래 저절로 신령스럽고 텅 빈 그 성품을 반드시 알라.


시뻘건 화롯불 속의 연꽃에다 비유하노라.


무심을 가지고 도의 경지라고 말하지 말라.


무심도 오히려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도다.



問君心印作何顔 (문군심인작하안)


心印誰人敢授傳 (심인수인감수전)


歷劫坦然無異色 (역겁탄연무이색)


呼爲心印早虛言 (호위심인조허언)


須知本自靈空性 (수지본자영공성)


將喩紅爐火裏蓮 (장유홍로화리련)


勿謂無心云是道 (물위무심운시도)


無心猶隔一重關 (무심유격일중관)



∴   십현담(十玄談) 1에서 동안 상찰 (?~961) 스님 말씀입니다.






대승불교에 이어 선불교가 발전하면서


일심의 문제에 대한 견해와 표현들이 분명해졌다.


불교의 대의가 선(禪)의 대의로 다시 곧 마음으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마음의 도장이라는 이 글을잘 이해하면


불교의 대의가 무엇이며 선의 종지가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깨달으리라 생각된다.



마음에 대한 이름은 마음의 구슬, 마음의 거울, 마음의 등불,


마음의 달, 마음의 근원, 마음의 법 등 많다.


이름을 붙여서 그 실체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대에게 묻노니, 마음의 도장이 어떻게 생겼는가?”로


시작하여 마음은 그 실체가 없다는 데 이른다.


그 마지막도 한 겹의 관문이 막혀 있다고 결론 짓는다.



이심전심이라 하여 마음을 전해주고 전해 받는다.


달마 스님도 단순히 마음만을 전했다고도 한다.


세상 사람들의 심인은 온갖 재질과 모양으로 만들어 졌다.



하지만 이란 알고 보면 그 어떤 모습도 아니다.


푸르지도 희지도 검지도 않다.


모나거나 둥글지도 않다.


글자도 전혀 없다.


그런 마음의 도장을 누가 감히 전해 주고 전해 받는가.


모두가 거짓말이며 틀린 말이다.


『금강경』에서도 이르지 않았던가.


“과거의 마음도,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찾을 수 없다.”



굳이 말한다면 마음은 텅 비어 공적하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찾을 수 없고 그려낼 수 없다.


“무수한 세월 동안 평탄하여 아무런 다른 형색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도장’이라고 이름 지어 부르는 것은 모두 헛소리다.



비유한다면 마음의 본래 공적한 성격은 활활 타는 화롯불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난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마음의 신묘한 도리를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비유가 대단히 절실하고 근사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실은 어떤 말도 꼭 맞는 말이 아니다.


결국은 무심의 경지가 마음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


그러나 그것도 한 겹의 관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무심이란 유심의 병을 고치기 위한 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이치가 곧 불교의 대의다.


그리고 이 이치가 곧 선의 대의다.



(무비스님 해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