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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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주 : 3/5 영혼의 모음(母音) -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법정스님)

작성자
hhhh
작성일
2022-01-01 18:44
조회
487
 

영혼의 모음(母音)


어린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 왕자! 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꽃인 줄 알았다가, 그 꽃과 같은 많은 장미를 보고

실망한 나머지 풀밭에 엎드려 울었었지?

그때 여우가 나타나 ‘길들인다’는 말을 가르쳐 주었어. 그건 너무 잊혀진 말이라고 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길들이기 전에는 서로가 아직은 몇 천 몇 만의 흔해빠진 비슷한 존재에 불과하여 아쉽거나 그립지도 않지만, 일단 길을 들이게 되면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거야.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은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난 어느 발소리하고도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다.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이 되어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여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밀밭이, 어린 왕자의 머리가 금빛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황금빛이 감도는 밀을 보면 그리워지고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토록 절절한 ‘관계’가 오늘의 인간 촌락에서는 퇴색해 버렸다. 서로를 이해와 타산으로 이용하려 들거든.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나와 너의 관계가 없어지고 만 거야. ‘나’는 나고 ‘너’는 너로 끊어지고 말았어. 이와 같이 뿔뿔이 흩어져버렸기 때문에 나와 너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거야. 인간관계가 회복되려면, ‘나’, ‘너’ 사이에 ‘와’가 개재되어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될 수 있어.

다시 네 동무인 여우의 목소리를 들어볼까.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다 만들어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사면되니까. 하지만 친구를 팔아주는 장사꾼이란 없으므로 사람들은 친구가 없게 됐단다. 친구가 갖고 싶거든 날 길들여!” 길들인다는 뜻을 알아차린 어린 왕자 너는 네가 그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임을 알고 이렇게 말한다.

“내 장미꽃 하나만으로 수천수만의 장미꽃을 당하고도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준 꽃이니까. 내가 고깔을 씌워주고 병풍으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이 그 장미꽃이었으니까. 그리고 원망하는 소리나 자랑하는 말이나 혹은 점잖게 있는 것까지라도 다 들어준 것이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니까.”

그러면서 자기를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자기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라고 했다.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법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