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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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지장보살님! (김태권)

작성자
hhhh
작성일
2020-12-11 22:26
조회
96
 

“메리 크리스마스, 지장보살님!”


(한겨레신문 김태권)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생일이다. 그런데 그는 왜 로마제국의 후계자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건너뛴 채, 자신의 가르침을 직접 제국의 국교로 선언하는 편리한 길을 놔두고 말이다. 그러는 대신 예수는 일부러 “베들레헴의 말구유, 천하고 냄새나는 형편없는 곳인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불교에도 이 못지않은 분이 있다. 깨달은 이후 고통 없는 세상에 갈 수 있었지만, 지장보살은 일부러 형편없는 곳 중에도 형편없는 곳인 지옥을 골라 환생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 모두가 부처가 되는 그때 자기도 고통 없는 세상에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나는 지장보살을 생각한다.

불교경전 [지장보살본원경]을 보면, 깨달음 이전에 지장보살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나온다. 한번은 백성을 가르치는 임금이었고, 한번은 세상을 구하려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잘 나가는 남자로 살았던 이 두 편의 이야기는 솔직히 재미있지는 않다.

여성으로 산 두 편의 전생담이 눈에 띈다. 한번은 광목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한번은 인도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브라만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두 이야기가 닮았다.) 브라만으로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보자.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디로 가셨을까, 혹시나 지옥에 가시지는 않았을까, 딸은 걱정이었다. 전 재산을 팔아 공양을 올렸다. ‘문득 하룻밤 하룻낮을 지나자 딸은 한 바닷가에 와 있었다.’ 경전 기록이다. 끓어오르는 바닷물 속에 수많은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하늘에는 쇠로 된 몸을 가진 짐승이 날아다니며 이들을 공격했다.

살아있는 몸으로 지옥에 여행을 오다니, 단테의 [신곡]과 비슷하다. 지옥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나는 점도 똑 닮았다. 이름은 ‘무독’, 지옥의 관리직 공무원인 ’귀왕’이었다. 주인공이 시시콜콜한 것을 물어도 무독 귀왕은 친절히 대답한다. 딸의 마지막 질문은 “어머니가 지옥에 있느냐?” 답은 “효성 깊은 딸이 집을 팔아 공양한 덕분에 어머니뿐 아니라 동료 죄인들도 지옥을 벗어나 천상에 환생했다.” 나름 해피엔딩이다. 주인공은 “먼 미래까지 지옥의 죄인들을 해탈하도록 돕겠다”고 약속, 나중에 지장보살이 된다. (무독 귀왕은 그를 보좌하는 협시보살이 된다.)

지장보살을 그리거나 보살상을 만드는 자는 “삼백번이나 천상에 환생하고 천복이 다해 인간 세상에 태어난대도 나라의 임금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혹시 나도? 하지만 아쉽게도 한 사람이 이 종교 저 종교의 혜택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불자가 아니니 지장보살의 덕을 바로 입지는 못할 것 같다.(아깝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지장보살을 떠올리며 우리가 누리게 될 복락이 있다. 적어도 우리가 지금 사는 이승을, 서로 자기 종교만 옳다며 싸우는 지옥으로는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올해 10월만 해도 자기네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불교 사찰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은 보기 아름답다. “불교는 가톨릭의 좋은 이웃이다.” 지난해 태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말이다. 2010년 이후로 서울 조계사는 해마다 사찰 입구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고 점등식을 연다. 이런 광경을 보면 나는 뭉클하다. 보살께도 이렇게 인사드리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장보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