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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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보림)

작성자
hhhh
작성일
2022-11-09 22:33
조회
595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눈이 빠질 듯 기다리던 영남알프스 9봉 완등 기념메달이 드디어 집으로 배송되었다. 나는 9봉을 오르내릴 때 깊고 푸른 산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폴 고갱도 품었던 그런 의문을 나는 산을 오르내리며 성찰해보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숨을 쉬고 있는 “지금 • 여기”이며, 사랑과 자비의 실천임을 알았다.

▒ 영축산 (뭐시 중헌디) : 라즈기르 영축산을 오르내리시던 그분을 생각하며 반야암 능선으로 영축산을 오른다. 비탈이 심한 곳에서는 솔바람이 쉬어가라며 소매를 붙잡는다. 저 멀리 장엄한 바위와 소나무는 세월을 깔고 앉아 산을 지키고 있다. 양산 통도사에서 영축산과 재약산을 넘어 밀양 표충사로 걸망을 지고 산길로 다니시던 무소유의 법정 스님, 그분의 가벼웠던 발걸음도 영축산에 올라 눈으로 더듬어 본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다. 모두들 잠시 살다가는 이곳, 언젠가는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인생. 그런 인생에 ‘뭐시 중헌디’. 산에 들면 그런 생각들을 해본다.

▒ 간월산 (끈질긴 인연의 고리) : 배내봉으로 오르는 풀숲에 몸을 낮추어 자라는 용담이 눈에 띄었다. 보랏빛 꽃잎 다섯 장. 이토록 아름다운 꽃에도 신산한 일상이 있었던가. 용의 쓸개처럼 쓰다는 뿌리로부터 용담이라는 꽃 이름이 나왔으니 말이다. 배내봉과 간월산 꼭대기를 지나면 간월재 평전이다. 지난겨울 불기둥 같은 눈바람이 일렁거렸겠지. 또다시 가을이 찾아들고 억새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탱글탱글한 햇볕에 은빛 물결이 눈부시다. 사람들이 떠나고 어둠이 깊어지면 영롱한 별빛은 우주를 가로질러 지구별 억새꽃밭으로 모여들 것이다. 아~ 밤새 흥건하게 서걱댈 그리움의 몸짓들.

▒ 신불산 (신과 붓다의 나라) : 가천 들머리에서 멀리 올려다본다. 비를 머금은 엷은 잿빛 구름이 7부 능선까지 덮고 있다. 신불산의 신불이 한자로 神佛이라 신과 붓다의 산이로다. 사랑과 자비가 나에게 오늘의 산행 화두다. 그것은 어디에서 나올까, 어디까지일까. "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일까. 착한 사마리아인까지인가. "오른 손으로 한 일을 왼손도 모르게" 일까. 아, 너무 어렵다. 오히려 이것이 맘 편하다. "마당을 쓸면 지구의 한 모퉁이가 깨끗해진다." 짙은 구름이 덮인 산정에서는 조금만 멀어져도 물체가 희미해진다. 그 경계의 안과 밖은 어디까지인가. 실은 경계선마저 없으리라. 발아래 저만치 억새꽃도 저 멀리 인가도 모두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 천황산과 재약산 (장금長今, 언제나 지금) : 흐드러지게 핀 억새꽃 사이로 다시 가을이 익어간다. 천황산 정상석 아래에는 네 명의 젊은이가 기타와 탬버린으로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산정에 서서 영남 알프스의 봉우리를 한눈에 담아본다. 발아래에는 재약산이 솟아 있다. 그곳을 바라보는 나의 몸은 가늘게 떨린다. 눈은 더욱 맑아지고 가슴은 막힘없이 툭 트인다. 나와 너, 그것의 굳건한 형상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고 사라져 가리라. 행복한 세상은 어디인가. 가을을 붙들고 있는 저 젊은이들처럼 바로 ‘지금 여기’일 것이다.

▒ 운문산 (무엇을 ‘사리’로 남겨야 할까) : 웅대한 지세에 범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어서 일명 호거산이다. 절정의 가을이 찾아든 석골사 계곡은 지렁이처럼 꾸불꾸불 끝없이 올라간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사귀는 매 순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를 무렵 상운암 관음전 부처님께 먼저 인사를 올렸다. 노장 지수스님은 출타 중인 모양이다. 뜰의 가장자리에 놓인 나무의자는 스님을 닮아 깡마른 수행자의 모습으로 건너편 산을 여린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다.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하던대 나는 무엇을 ‘사리’로 남겨야 할까.

▒ 가지산 (칼날처럼 순결한 상고대여) : 목구멍까지 숨이 차오를 무렵, 정면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인다. 저기가 가지산 정상인가. 주위에 더 높은 봉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 중봉(1167m)이었다. 어릴 때 산을 오르는 꿈을 자주 꾸었다. 눈앞에 보이는 가장 높은 산을 오르면 그 뒤에 더 높은 산이 나타나고, 그 산을 오르면 또다시 더 높은 산이 뒤에 나타나곤 했다. 정상 가까운 곳에 이르니 하얀 꽃이 나뭇가지마다 피어올랐다. 상고대였다. 하얀 목도리를 단단히 둘러맨 가지산 정상에 서서 다시 상고대를 내려다본다. 지난여름 폭우의 모습으로 거칠게 우리들 곁에 왔다가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려갔었지. 석남사 옆을 지나칠 때 수승한 법문을 들었나 보다. 칼날처럼 순결한 상고대의 모습으로 오늘 다시 돌아왔으니.

▒ 문복산 (깊은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 영남 알프스의 막내둥이 문복산에 입산한다. 일찍이 문복이라는 노인이 산에 들어와 홀로 도를 닦았던 곳이다. 문복산의 보물은 건장한 코끼리 형상의 드린바위이다. 하늘에 머리가 닿는 직벽 바위 위에 걸터앉으면 보현행원의 서원을 올릴 수 있을까. 동남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젊은 시절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올랐던 고헌산의 마루금이 북으로 내달린다. 이제는 산을 내려가야 할 시각이다. 어디서 곱게 물던 단풍잎 하나 어깨 위로 떨어진다. 나의 인생에도 시방 깊은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 고헌산 (남에게 친절하라) : 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고헌산은 여러 하천의 발원지를 품고 있다. 북사면 8부 능선 어느 곳에선가 동창천이 시작된다. 청도는 아버지의 고향이고 어머니와 나의 고향은 햇살 가득한 밀양이다. 그 동창천이 청도를 지나 밀양강으로 흘러든다. 산을 오를 때 고헌산 가슴쯤에 숨어 있는 발원지 쪽으로 자꾸 눈길이 간다. 산정은 들머리 외항재에서 멀지 않았다. 언양의 진산은 고헌산이다. 언양의 옛 이름인 ‘헌양’에서 ‘헌’자를 따고 산이 높아 고헌산이라 하였다. 고헌산 서봉을 첫사랑처럼 왼쪽 옆구리에 두고 가을 산을 내려오며 달리 생각해 본다. 고헌산의 ‘헌’이 바칠 ‘헌’자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칼날처럼 시퍼렇게 날이 선 각자도생의 일상일지라도 이웃에게 내 놓아야 할 것이 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고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향이로다.”

(윗글은 영남 알프스 9봉 완등자 가운데 울주군에서 실시한 제1회 영남알프스 9봉 완등 수기 공모에서 입선한 보림 거사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