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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중도 (中道)

작성자
hhhh
작성일
2021-01-16 09:03
조회
590
 

중도(中道)



- 극단을 떠난 바른 길 -



"제자들아, 그대들은 두 극단으로 달려가서는 안 되나니, 그 둘이란 무엇인가?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 함은 어리석고 추하다.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못하며 또 이로움이 없느니라. 또한 스스로 고행을 일삼으면 오직 괴로울 뿐이며, 역시 성스럽지 못하고 이로움이 없느니라.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뜨게하고 지혜를 생기게 하며, 적정과 증지와 등각과 열반을 돕느니라. <잡아함경>"

중도는 쉽게 말해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유와 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진실한 도리, 고와 낙의 양쪽을 떠난 올바른 행법을 가르친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직후, 수행자 시절에 함께 수행하다 떠난 다섯 명의 수행자를 찾아가 처음으로 설법을 하셨다. 이를 초전법륜이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중도와 사성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중도와 사성제는 부처님이 깨친 연기법과 어떤 관계에 있을 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당시 인도 사회의 분위기를 알아야 한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 사회는 사상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다. 전통 사상가와 육사외도를 비롯한 신흥 사상가들은 크게 상주론과 단멸론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고정불변의 개별 아(我)인 아트만의 끊음 없는 윤회를 인정하는 부류는 상주론을 주장하고, 윤회를 부정하고 한 번의 생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부류는 단멸론을 주장했다.

상주론을 주장하는 사상가들은 엄격한 고행을 통해서만 우주의 주재자인 브라만과 아트만이 합일할 수 있다는 주장 아래 고행주의를 강조한 반면, 모든 것은 단 한 번의 생으로 끝난다고 주장하는 부류들은 인과를 부정하고 현실에서 쾌락을 즐겼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님은 왕위가 보장된 왕궁을 떠나 6년 동안 고행주의 수행을 택했다. 그런데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고행의 수행법이 결코 깨달음에 이르는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을 개닫고 그 수행을 중단하였다.

그러자 다시 함께 수행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고타마가 타락했다” 며 부처님을 비난하고 떠나버렸다.

그래서 고행주의에 빠져 있던 그 다섯 비구에게 양 극단을 벗어난 올바른 길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시키는 첩경이었던 것이다. 즉 중도와 사성제는 설법을 듣는 대상의 근기에 맞게 연기법을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중도의 중요한 가치가 숨어 있다.

‘연기는 곧 중도다’라는 말이 있다. 중도란 양 극단을 떠나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요, 조화로운 관계는 바로 나와 너를 고집 하지 않고 상호 연결되는 연기 관계를 일컫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기에 입각해야만 중도의 자리에 서게 된다. 사성제 또한 인과의 법칙, 즉 연기의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도, 연기, 사성제는 입장에 따른 차이일 뿐 그 근본 구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중도의 가르침을 구분하여 ‘고락중도(苦樂中道)’, ‘단상중도(斷常中道)’, 유무중도(有無中道)‘라고 한다. 고행주의와 쾌락주의라는 극단, 단멸론과 상주론이라는 극단, 유 아니면 무라는 극단을 떠난 길이 바로 중도이다. 여기서 지적하는 세 가지는 부처님 당시에 횡행하던 극단적 사상과 사조를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중도를 실천할 것인가? 중도를 양 극단의 가운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중간일 뿐 중도가 아니다. 예를 들어 흑백논리가 틀리기 때문에 어중간한 회색논리를 펴는 것은 옳지 않다. 중도는 잘못된 것을 떠나 옳은 위치에 서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중도는 곧 정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중도는 나와 너, 옳음과 그름, 이것과 저것, 내편과 네 편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갈등하는 고통을 치유하는 바른 길이다. 즉 중도의 실천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팔정도이다. 고행주의와 쾌락주의의 양 극단을 떠난 바른 길이 바로 팔정도이며, 이 팔정도는 사성제와 연결되어 있다.

부처님은 내세나 영혼의 문제와 같은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하셨다. 이를 무기라고 한다. 어느 질문에 대답하면 삿된 소견이나 의혹만 더해질 뿐이며, 연기와 중도의 자리에서야만 진실을 볼 수 있다.고 설하신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화살의 비유를 들어 그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논의에 얽매기보다 올바른 생활과 수행, 즉 중도의 실천을 통해 해탈의 길을 찾으라고 권하신다.

독화살을 맞은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독화살을 빼고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독의 성분과 화살이 날아온 방행 등을 알아야 한다며 독화살 빼는 것을 늦추니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삶도 마찬가지다 팔정도를 통해 중도를 실천함으로써 하루빨리 깨달음에 다다라야할 것이다.

이와 같이 중도는 부처님의 초전법륜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릇된 견해나 극단의 견해를 떠난 바른 견해와 실천을 제시하여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성철 큰스님의 말씀처럼 중도는 시비선악 등과 같은 상대적 대립의 양쪽을 버리고, 모순과 갈등이 상통하여 융합하는 절대의 경지로서, 불자들이 추구해야 할 바이다.

(조계사 김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