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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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성철 평전 (김택근)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07-28 15:34
조회
906
성철 평전

김택근선생이 쓴 성철 평전을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의 상징이자 시대적 아픔을 치유하신 큰스님의 삶과 사상, 깨달음과 가르침이 잘 정리 되어있지요.

이 책은 큰 스님에 관한 여러 전기와는 달리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서술된 것이 특징입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치열한 각자도생의 삶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존감을 유지하고 동시에 공동체 잘 가꾸어 나갈 수 있는 지를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반님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 남모르게 남을 도웁시다. (p. 26)


- 열반송

生平欺誑男女群 (생평기광남녀군)

彌天罪業過須彌 (미천죄업과수미)

活陷阿鼻恨萬端 (활함아비한만단)

一輪吐紅掛碧山 (일륜토홍괘벽산)

일생 동안 미친 말로 무수한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아미타 부처님께 지은 죄업이 수미산보다 크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한이 만갈래나 되는지라,

한덩이 붉은 수레바퀴 온 세상을 비추며 청산에 걸려네. (p. 30)

** 큰스님의 열반송은 범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정말로 지옥에 갔을까. 그렇지 않다. 스님들의 선적인 언어는 범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바깥의 언어로서 역설과 반어를 통해 마음의 세계를 노래한다. 그래서 범인들에겐 그들 수준에 맞는 해석이 필요하다. 아래 인용한 글을 읽어보자 **

[1]행 : 나는 일생 동안 무수한 어리석은 중생들을 고통을 떠난 깨달음의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하여 수많은 말과 방편을 써서 중생을 제도(濟度)하였으나, 내 말이나 쓴 방편(方便)이나 다 형상 있는 것들로서 제행무상(諸行無常)한 것이라, 마치 강을 건널 때 쓰는 뗏목과 같아서 뗏목 자체가 저 언덕의 진리 자체가 아니요, 뗏목 자체는 깨닫기 전에 저 언덕에 이르기 전에 잠깐 의지하는 것일 뿐이라. 또한 진리 그 자체로 말한다면, 이 현실 이대로 지금 이 자리가 바로 극락세계요, 달리 극락세계가 없는 것이라. 여러분에게는 이 현실 이대로 이 자리를 떠나 달리 극락세계가 있는 듯이 내 말이 들렸을지 모르나, 이는 사실이 아니요, 단지 중생은 깨닫지 못하여 극락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을 잘못 써서 지옥에 사는 것일 뿐이라. 그러므로 자기 마음을 바로 보고 바로 깨달으면 여러분은 이미 구원 되어 있고, 이미 극락세계에 사는 것을 알 것이라. 그러므로 달리 극락이 따로 있고 새로 구원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면, 여러분은 내 말에 속은 것이라. 비유하면 환자가 병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매 가짜 약을 썼을 뿐, 본래 그 사람은 환자가 아니라 건강하여 병이 없고 따라서 약이 필요치 않음과 같다. 그러므로 내 말과 내 방편에 깨달은 뒤에는 속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 여러분들이 깨침의 힘이 약할 때 잠깐 의지하는 지팡이로 알라.

[2]행 : 그러나 내가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극락세계의 아미타불 세상으로 인도하겠다고 부처님께 서원 하였건만, 지혜와 덕이 부족하고 인연이 닿지 못하여 저다지도 고통 받는 중생이 많건만 다 건져내지 못하여 부처님께 지은 죄가 크도다. 중생으로부터 한량없는 보시와 공양을 받고도 그 밥값을 다 했는가를 자문할 때 그 은혜를 다 갚지도 못하였구나.

[3]행 : 그러므로 지장보살이 지옥고(地獄苦)를 받는 중생을 건지기 위해 지옥에 일부러 들어가는 것과 같이, 살아 있을 때에도 중생 구제를 위해 사바세계에 몸을 담가 중생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중생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었으니, 나는 마음의 자유를 얻어 극락에 있어도 마음이 부자유한 중생들의 세상인 지옥에 살았고, 지옥에 있어도 극락에 있었으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빠져서 무진 고통을 받는 지옥 중생들을 다 건지지 못하여 참으로 한이 많다. 아직도 제도(濟度) 하지 못한 중생들이 인생을 살면서 고통바다 끝없이 헤매니, 본래 부처인 사람들이 지옥에 빠져 중생 모습으로 고통 받고 살아가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하랴.

[4]행 : 그러나 이제 세상 인연이 다함에 이르러 부탁하노니, 참마음 또는 부처님은, 진리는 저 하늘의 달이나 태양과 같이 늘 떠서 온 세상을 비추고 있음과 같음이라, 천지 삼라만상과 뭇 중생이 모두 참마음 그 자리를 그 본성에 다 갖추고 있어서 한시도 쉼 없이 그 빛이 나투어 작용하여 그 공덕으로 살아가고 있음이라. 마치 하나의 달이 일천 개의 강에 비추임과 같다. 참마음이 나투어 작용하지 않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단지 여러분의 눈이 어두워서 이를 보지 못할 뿐임을 알고, 저 달이나 태양이나 자기 마음을 가리키는 내 손가락을 보지 말고, 바로 저 달이나 태양이나 자기 마음을 바로 보고 바로 깨달음을 얻으라. 부처님의 말씀과 부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법맥을 이어온 역대 전등(傳燈) 여러 조사(祖師)뿐만 아니라 나의 말마저도 손가락이나 청산(靑山)일뿐, 저 하늘의 달이나 태양이나 자기 마음 그 자체는 아니니, 손가락이나 청산을 보지 말고 저 달이나 태양을 즉 여러분 자신의 참마음을 보고 바로 깨달음을 얻으라. 그리하여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어 끝도 없는 고통의 세계를 헤매는 인생에서 벗어나서, 생사(生死)에도 자유로운 대자유인이 되어 지혜와 자비광명이 넘치는 극락의 인생을 살아가라.

(수레바퀴님의 해석 인용)


- 중생의 근본 자성은 본래 청정한 것인데 번뇌망상의 티끌이 꽉 타서 지혜광명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깨우침이었다. 마음만 본래의 모습대로 닦으면 모두가 부처였다. 부처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었다. 중생이 곧 부처였음을 처음 밝힌 분이 석가모니 부처였다. (p. 64)


- 다른 종교는 절대신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불교는 인간의 본래면목을 바로 깨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p. 65)


- 한물건

한 물건이 있으니 천지(天地)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고, 천지가 다 없어진 후에도 항상 있다. 천지가 천 번 생기고 만 번 부서져도 이 물건은 털끝만치도 변동 없이 항상 있다.

크기로 말하면 가없는 허공의 몇 억 만 배가 되어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래서 이 물건의 크기를 큰 바다에 비유하면, 시방의 넓고 넓은 허공은 바다 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물거품과 같다.

또 일월(日月)보다 몇 억 만 배나 더 밝은 광명으로써 항상 시방세계를 비추고 있다. 밝음과 어두움을 벗어난 이 절대적인 광명은 우주 만물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 물건은 모든 명상(名相)과 분별을 떠난 절대적인 것이다. 절대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지마는 부득이 해서 절대라는 것이다.

한 물건이란 이름도 지을 수 없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한 물건이란 이름으로 표현하니, 한 물건이란 이름을 붙일 때 벌써 거짓말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일시에 나타나서 억천만겁이 다하도록 설명하려 해도, 이 물건을 털끝만치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가 깨쳐서 쓸 다름이요, 남에게 설명도 못하고 전할 수도 없다.

이 물건을 깨친 사람은 부처라 하여, 생사의 고통을 영원히 벗어나서 미래가 다하도록 자유자재한 것이다.

이 물건을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항상 생사바다에 헤매어 사생육도(四生六途)에 윤회하면서, 억만겁토록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중생이라도 다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 깨친 부처나 깨치지 못한 조그마한 벌레까지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다른 것은, 이 물건을 깨쳤느냐 못 깨쳤느냐에 있다.

석가와 달마도 이 물건은 눈을 들고 보지도 못하고 입을 열어 설명하지도 못한다. 이 물건을 보려고 하면 석가도 눈이 멀고 달마도 눈이 먼다. 또 이 물건을 설명하려고 하면 부처와 조사가 다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오직 깨쳐서 자유자재하게 쓸 따름이다.

그러므로 고인이 말씀하기를, 「대장경은 모두 고름 닦아버린 헌 종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말하노니 「팔만대장경으로써 사람을 살리려는 것은 비상으로써 사람을 살리려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경전 가운데도 소승과 대승이 있으니, 대승경에서는 말하기를 `설사 비상을 사람에게 먹일지언정 소승경법으로써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승경 역시 비상인 줄 왜 몰랐을까? 알면서도 부득이한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크게 정신 차려야 한다.

오직 이 한 물건만 믿는 것을 바른 신심이라 한다. 석가도 쓸데없고 달마도 쓸데없다. 팔만장경이란 다 무슨 잔소리인가? 오로지 이 한 물건만 믿고 이것 깨치는 공부만 할 따름이요, 그 외에는 전부 외도며 마구니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염불해서 죽어 극락세계에 가서 말할 수 없는 쾌락을 받는데, 나는 이 한 물건 찾는 공부를 하다가 잘못되어 지옥에 떨어져 억만겁토록 무한한 고통을 받더라도, 조금도 후회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직 이 공부를 성취하고야 만다!' 이러한 결심이 아니면 도저히 이 공부는 성취하지 못한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죽이면서도 눈 한 번 깜짝이지 않는 사람이라야 공부를 성취한다.”고 하였다. 나는 말하노니 “청상과부가 외동아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만한 무서운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이 공부할 생각을 말아라.”고 하겠다.

천근을 들려면 천근 들 힘이 필요하고, 만근을 들려면 만근 들 힘이 필요하다. 열 근도 못들 힘을 가지고 천 근 만 근을 들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면 미친 사람일 것이다. 힘이 부족하면 하루 바삐 힘을 길러야 한다.

자기를 낳아 길러 준 가장 은혜 깊은 부모가 굶어서 길바닥에 엎어져 죽더라도 눈 한 번 거들떠보지 않는 무서운 마음, 이것이 고인의 결심이다.

제왕(帝王)이 스승으로 모시려 하여도 목을 베이면 베였지 절대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고인의 지조이다.

사해(四海)의 부귀는 풀잎 끝의 이슬방울이요, 만승의 천자는 진흙 위의 똥 덩어리라는 이런 생각, 이런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야 꿈결 같은 세상 영화를 벗어나 영원불멸한 행복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털끝만한 이해로써 칼부림이 나는, 소위 지금의 공부인과는 하늘과 땅인 것이다.

다 떨어진 헌 누더기로써 거품 같은 이 몸을 가리고 심산 토굴에서 감자나 심어 먹고 사는, 최저의 생활로써 최대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오직 대도(大道)를 성취하기 위하여 자나 깨나 모든 힘을 다해서 공부해야 한다.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시키지 않으면 대는 도저히 성취하지 못한다.

사람 몸 얻기도 어렵고, 불법 만나기도 어렵다. 모든 불보살(佛菩薩)은 중생들이 항상 죄 짓는 것을 보고 잠시도 눈물 마를 때가 없다고 한다.

중생이란 알고도 죄 짓고 모르고도 죄 짓는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많이 지은 죄보(罪報)로써 사생육도에 돌아다니며,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 몸 얻기란 사막에서 풀잎 얻는 것과 같다. 설사 사람 몸 얻게 된다 하더라도 워낙 죄업이 지중해서 불법 만나기란 더 어렵고 어렵다. 과거에 수많은 부처님이 출현하시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했건만 아직껏 생사의 고를 면치 못한 것을 보면, 불법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것이다.

이렇게 얻기 어려운 사람 몸을 얻어 더 한층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났으니, 생명을 떼어놓고 공부하여 속히 이 한 물건을 깨쳐야 한다. 사람의 생명은 허망해서 믿을 수 없나니, 어른도 죽고, 아이도 죽고 병든 사람도 죽고, 멀쩡한 사람도 죽는다. 어느 때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니 어찌 공부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겠는가?

이 물건을 깨치기 전에 만약 죽게 된다면, 또 짐승이 될는지, 새가 될는지, 지옥으로 떨어질는지 어느 때 다시 사람 몸 받아서 불법을 만나게 될는지, 불법을 만나도 세상 최고의 길인 이 한 물건 찾는 공부를 하게 될는지, 참으로 발 뻗고 통곡할 일이다.

이다지도 얻기 어려운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다시 어느 생에 공부하여 이 몸을 건지리오.

제일도 노력, 제이 제삼도 노력, 노력 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노력한 그만큼 성공하는 법이니, 노력하고 노력할 지어다. (p.151)


- 발원문(發願文)

願我堅凝鐵石心 世世恒修無漏禪

원아견응철석심 세세항수무루선

大智大德大勇猛 萬重障惑順蕩盡

대지대덕대용맹 만중장혹순탕진

擡脚不踏女身影 下口那咬衆生肉

대각부답여신영 하구나교중생육

淸淨信施避似箭 豪貴榮譽視如仇

청정신시피사전 호귀영예시여구

一擧直衝金鎖關 驀踊毘盧頂上行

일거직충금쇄관 맥용비로정상행

淨嚴菩提大道場 盡未來劫常自在

정엄보리대도량 진미래겁상자재

塵沙法界無邊刹 千類萬形視應現

진사법계무변찰 천류만형시응현

高提金剛寶王劍 廓開向上秘妙藏

고제금강보왕검 확개향상비묘장

一切含靈度無餘 永使法海得淸晏

일체함령도무여 영사법해득청안

虛空雖然有可壞 我願終當不動移

허공수연유가괴 아원종당부동리

十方三世無上尊 特垂慈哀密加護

시방삼세무상존 특수자애밀가호

消滅一切諸障碍 疾速圓滿是大願

소멸일체제장애 질속원만시대원

(발원하옵나니, 철석같이 단단한 마음으로

세세생생 무루선 닦아

크고 큰 지혜와 덕, 커다란 용맹심으로

만 겹 장애 만 겹 미혹 모두 녹아지이다.

여자의 몸은 그림자도 닿지 않으며

중생의 고기는 그 어디에 입을 대리오.

깨끗한 시주물이라도 화살인 듯 피하고

부귀와 영화는 원수 보듯 하여서

굳게 닫힌 쇠관문을 단번에 뚫고

비로정상에 훌쩍 뛰어올라서

보리의 대도량 청정하게 장엄하고

미래겁이 다하도록 언제나 자재하여지이다.

한없는 법계 끝없는 국토에

천만 가지 모습으로 나투어서

금강의 보배검을 높이 쳐들고

향상의 비밀 창고 활짝 열어서

일체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고

법의 바다 영원히 청정과 평안하게 하여지이다.

저 허공은 비록 깨어진다 하여도

나의 원은 끝끝내 꿈쩍도 않으리.

시방삼세에 더없이 높으신 분이시여,

오직 애민자비를 내려 비밀히 가호하시어

모든 장애 녹아 없어지고

어서 빨리 이 큰 원 이루어지게 하여지이다.) (p.151)


- 오도송

黃河西流 崑崙頂 (황하서류 곤륜정)

日月無光 大地沈 (일월무광 대지침)

遽然一笑 回 首立 (거연일소 회 수립)

靑山 依舊白雲中 (청산 의구백운중)

황하를 西로 거슬러 곤륜산정에 올라보니,

일월음양(能所)은 빛을 잃고, 대지(境界)도 꺼져버리네.

이런 거였어? 한 번 웃고는, 돌아와, 머리 들어보니,

청산(色界)은 여전히 흰 구름(無明) 속에 싸였구나.

(p. 159)



- 마음을 깨친다는 것은 무심을 증득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지혜광명이 생기고 대자유가 생긴다. 비로소 꿈을 깬 사람, 마음의 눈을 뜬 사람이 되어 대자유의 자재로운 활동을 하게 된다. (p. 160)


- 불공이란 남을 도와주는 것이지 절에서 명도 주고 복도 준다고 목탁 두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절이란 불공 가르치는 곳이지 불공드리는 곳이 아니란 애기예요. 불공은 절 밖에 나가 남을 돕는 것입니다. (p. 309)


- 행복은 인격에 있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절대적 존재이며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닦아서 참으로 완전한 인격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p. 361)


- 마음을 닦는 것이 불교이다. (p. 361)


- 아비라기도는 참회를 통해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비로자나 법신진언인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를 염송하며 절을 올린다. ‘옴’은 우주생성의 원리이고 ‘아미라 훔 캄“은 법신을 ’스바하‘ 는 회향을 뜻한다. 그래서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일이 뜻대로 되게 하소서‘라는 의미이다. 아비라기도는 큰스님이 남긴 유산이다. (p. 434)


- 마음의 눈을 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참선이다. 이는 가장 수승한 방법이다. 견성하기 위해선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처음 동정일여에 들고 몽중일여, 숙면일여의 경지에 이른 후 거기서 더 정진하여 참다운 깨달음을 얻어라 일렀다. (p. 465)


- 불교의 생명이 마음을 깨치는 데 있다. (p. 481)


- 실상 남 몰래 남을 돕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남을 도와도 도왔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아야 진장한 불공이다. 다른 사람을 도왔다는 숭고함 갖은 것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면 진정한 보살도를 행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큰스님은 곧잘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일렀다. (p. 558)


-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마음을 깨쳐 세상을 바로 보면 만물이 관음이다. 우리의 실상을 바로 보면 우리 사는 지상이 곧 극락이니 행복을 다른 데서 구할 일이 아니다. (p. 581)


- 종교가 정치에 예속되는 순간 종교는 ‘으뜸 가르침’이 아니다. 권력과 타협하는 순간 권력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권력의 눈치를 봐야하고 종내는 권력에 엎드릴 수밖에 없다. 종교의 타락이다. (p. 586)


-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p. 597)

by 보림(寶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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