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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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큰스님과의 인연 : 내 마음 속의 꺼지지 않는 깨침의 등불 (현승훈)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09-09 21:11
조회
915


내 마음 속의 꺼지지 않는 깨침의 등불 (현승훈)


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가슴에 남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성철 스님은 내게 바로 그런 분이다. 그냥 등불이 아니라 내 마음 속의 꺼지지 않는 깨침의 등불인 것이다. 스님은 내 삶의 지평을 열어주셨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도록,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아래를 볼 수 있도록 지혜의 가르침을 주셨다. 이런 성철 스님과의 소중한 인연을 돌이켜보고자 한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몹시 더운 한여름에 부친께서 세상을 훌쩍 떠나셨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자식의 슬픔과 상실감은 말로 다하기 힘들었다. 들녘이 황금빛으로 넘실거릴 즈음 해인사에서 선친의 49재를 치렀다. 그때 큰스님을 처음 뵈었다.

큰스님을 처음 뵌 순간의 느낌은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스님의 형형한 안광을 잊을 수 없다. 이미 삼라만상의 모든 법칙을 깨친 듯한 구도자의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선친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공허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큰스님과의 만남은 큰 위안이 되었다.

이듬해 추석 무렵 백련암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큰스님을 접견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백련암으로 갔다. 그런데 3000배를 하지 않으면 큰스님을 접견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3000배 씩이나....’ 3000배를 한다는 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스님 뵙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쉬운 마음을 머금은 채 산을 막 내려가려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시자 스님이 큰스님께서 접견을 허락하셨다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큰스님께서는 우리가 전생에 인연이 있어서 만났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당부하셨다. 슬픔과 번뇌로 점철된 인생사의 역경을 극복하고 구도를 향한 용맹정진을 하라는 말씀이셨다. 또 구도의 한 방법으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3000배할 것을 권하셨다.

처음에 3000배 때문에 스님 뵙는 것을 포기하려 했었는데, 스님께 당부를 받고 보니 감당하기 힘들 것 같은 두려움도 진정되고, 3000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며 의아해하던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 당시 큰스님의 시자이신 원택 스님은 3000배가 수행의 한 방법이며 큰스님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3000배를 해야 한다고 자상하게 귀뜸해주었다.

그래서 마음을 돌려 3000배를 하였다. 일배 일배, 절을 거듭할 때마다 온몸에서 고통이 퍼져나갔다. 그 고통과 함께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심리적 갈등이 치솟았다. 온갖 망상이 내 몸과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그렇게 3000배 수행이 끝나는 순간, 신선한 전율이 온 몸과 마음을 감싸고 마음 속에서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해주신 스님께 감사했다.

이렇게 맺어진 큰스님과의 인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지중해져,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큰스님을 가까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불명도 큰스님께서 지어주셨다. 한때 큰스님께서는 고불원에서 4년, 겁외사에서 3년 동안 동안거를 지내셨다. 그곳은 내가 사는 곳과 인접해서 큰스님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었다. 나로서는 큰 기쁨과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큰스님과의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들은 가슴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그 밖의 몇가지를 떠올려본다. 한번은 우리 부부가 백련암을 오르면서 큰스님의 공양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스님께서는 비록 소식을 하시지만 몸에 좋은 것은 다 드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큰스님께서는 공양으로 솔잎가루, 불린 검은 콩, 김 몇장, 밥 한숫가락 정도를 무염으로 드셨다. 우리가 백련암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공양시간이었다. 그때 우리 부부를 마주하신 큰스님께서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좋은 것은 다 먹제” “.........” 순간 우리 부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동시에 ‘와!’하고 외치고 있었다. 큰스님께서 우리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계시는 것에 감탄할 뿐이었다.

또 스님은 평소에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3년 5월, 백련암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던 큰스님께서 갑자기 시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평소와 다른 스님의 행동이 조금 의외였지만 그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마냥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진 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스님께서는 입적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큰스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인연을 정리하시고자 그리하신 것 같다. 이제 다시는 뵐 수 없으니 그리운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 지금도 나는 큰스님께서 평상시 사용하시던 유품을 보면, 큰스님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큰스님께서는 근검과 청빈함으로 한평생을 사신 분이다. 일상생활에서 종이 한 장이라도 아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셨다. 요즘처럼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기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나에게 큰스님의 그 같은 모습은 큰 가르침이 되었다.

큰스님께서는, 깨달음은 사람들과 많이 나눌소록 커진다고 늘 강조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 가르침에 따라 우선 내가 경영을 맡고 있는 화승그룹의 임직원들에게 3000배의 좋은 점을 알리며 권하고 있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동참하여 깨달음의 기쁨을 같이 나누고 있다. 또 지인들에게는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큰스님의 가르침이 담긴 문구를 액자로 만들어 선물하고 있다.

지금도 나는 큰스님께서 생전에 당부하신 대로 대불정능엄신주를 수지독송하고 있다. 매일같이 능엄신주 60독과 500배를 일과로 하고 있다. 이는 성철 스님의 큰 사상과 청빈한 생활을 본받고, 널리 알리기 위한 미력한 나의 노력이다. 큰스님께서는 비록 열반하셨지만 그분과의 인연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도서출판 아름다운 인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