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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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스페인 산티아고 카미노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08-16 18:41
조회
894

스페인 산티아고 카미노에서


피레네 종단엔 두 번의 오점을 남겼다.

마음이 몸을 낳고 몸에서 마음이 생겨남을 몰랐으니.

카미노에 밤이 기울고 새벽이 열린다.

여명의 바람을 타고 올라 새들이 재잘거린다.

들꽃은 개울물 소리에 눈을 비빈다.

어디 닭이 울고 멀리서 부엉이가 기지개를 켠다.

까미노에 햇살이 깔린다.

나의 무명(無明)의 그림자는 늘 나보다 앞서 가고 있다.

걷고 또 걷는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풀밭이 아스라이 하늘에 닿아 있다.

사위가 사무치게 서러운 푸른 평원이다.

차가운 한 잔의 갈리시아 맥주로 목을 축인다.

우주가 내 속으로 들어오고 내가 우주 속을 유영한다.

무명의 그림자는 정오를 향해 사라질 듯 줄어들었다.

다름과 틀림의 수용은 발톱의 때가 되었다.

조주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까지 흉내 낼 태세이다.

자고나면 길어진 그림자로 또다시 비틀거리겠지만.

지난 겨울 그 가혹한 추위 속에 나무가 얼어 죽지 않았다.

세포 속의 물을 순수물질로 바꾸어 세포 사이의 공간에 저장한 것이다.

나의 고통은 어떻게 순수 물질로 바꾸어야 할까.

까미노에 바람은 차고 햇살은 뜨겁다.

물은 개울물로 흐르다가 구름과 비가 되기도 하였다.

산타마리아 기적의 성당에서는 거침없이 몰아치는 눈발로 변하였다.

산티아고 카테드랄에 이르면 숙성이 잘 된 와인이 된다.

주님이 물을 와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물이 주님을 만나 정말로 얼굴이 붉어져서 와인이 되었을까.

걷는 자 복이 있으라.

2018년 봄

寶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