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미셀러니

최종회 : (20) 인도성지순례 (백성호) : 붓다의 유언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12-24 09:20
조회
1009


최종회 : (20) 인도 성지 순례 : 붓다를 만나다 (백성호)


붓다의 유언



바라나시는 고대 인도에서 굉장히 큰 도시였다. 무역으로 큰 돈을 번 상인들도 많았다. 한 부잣집 아들이 새벽 무렵에 사슴동산을 찾아왔다. 그동안 그는 온갖 물질적 풍요와 쾌락을 누리며 살아왔다. 그 끝은 늘 허망함이었다. 쾌락은 영원하지 않았고, 지속되지도 않았다. 그는 사슴동산을 거닐며 삶이 너무 괴롭다라고 탄식했다. 그건 덧없는 삶, 덧없는 욕망의 종점에 대한 절규이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던 붓다가 그 탄식을 들었다. 젊은이의 이름은 야사였다. 그를 불렀다. 붓다는 쾌락이 왜 허망한가를 차근차근 이치로 설명했다. 쾌락의 감각, 그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 그 감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생각. 그 모두의 정체가 한 줄기 바람임을 일깨웠다. 생겨났다, 작용하고, 소멸하는 바람 말이다. 그래서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허망함만 더 커지는 이치를 설했다. 마치 무지개를 움켜쥐려고 할 때처럼 말이다.

야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하게만 엉켜 있던 고통의 덩어리, 그 실타래가 하나씩 풀렸다. 한 올씩 풀릴 때마다 그의 마음에 창()이 생겼다. 그 창을 통해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지금껏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삶의 상쾌함이었다. 이치의 명쾌함이었다. 야사는 결국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야사의 친구 50여 명이 왔다가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했다. 또 불의 신을 섬기던 가섭 삼형제도 자신들을 따르던 제자 1000명을 데리고 붓다에게 출가했다. 붓다의 제자는 처음 5명에서 이제 1000명 이상으로 늘었다.

나는 바라나시의 시장통을 찾았다. 거기서 작고 낡은 냄비에 끓여서 파는 차이(인도식 홍차)와 사탕수수 주스를 마셨다. ‘붓다 당시 이런 시장통에서도 소문이 돌았겠지. 채소를 사고 팔며 사람들은 붓다에 대해 말했겠지. 그렇게 바라나시 전역에 소문이 퍼졌겠지. 지금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가르침으로 한 스승이 사람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고 했겠지.’

붓다는 제자 1000명을 이끌고 가야산에 오른 적이 있다. 산마루에서 잠시 쉴 때였다. 붓다는 산 아래를 바라보며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고 설법했다. “너의 눈이 불타고 있고, 너의 눈이 닿는 것마다 불타고 있다. 불타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세상도 불에 타고 만다.이스라엘 갈릴리의 산마루에서 설한 예수의 산상수훈과 비슷하다고 해서 붓다의 산상설법이라고도 부른다.

2600년 전에도 그랬고, 10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세상은 불타고 있다. 나의 마음이 불타고 있고, 나의 삶이 불타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불타는 조선을 말한 바 있다. 자식의 성공, 가문의 성공을 위해 당시 양반들은 과거 시험에 목을 맸다. 자식이 일곱 살, 여덟 살만 돼도 과거 시험 과목을 공부시켰다. 교육은 암기식으로 변질됐고, ‘이치와 도를 터득해 세상을 지혜롭게 꾸린다는 성리학의 본래 목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갈수록 과거 제도는 본래 취지를 잃었고, 그 와중에 백성의 고통만 가중됐다. 요즘도 그렇다. 굳이 헬조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불타는 세상에서 불타는 삶을 살아간다.

나는 버스를 타고 쉬라바스티로 향했다. 쉬라바스티는 신라 때 서라벌(徐羅伐, 경주)’로 음역됐고, 다시 지금의 서울이 됐다. 이 도시에 기원정사가 있다. 붓다는 거기서 금강경을 설했다고 한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2600년 전의 벽돌과 사원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붓다가 거처했던 방 여래향실의 벽돌터도 있었다. 당시 이곳에 1250명의 비구가 있었다고 한다.

붓다는 알았을까. 두 번의 천년, 거기에 또 육백년이 흐른 뒤에 세계 각국의 제자들이 이곳을 찾아오리란 사실을 말이다. ‘내 마음의 불을 끄고자 저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리란 사실을 알았을까. 나는 신발을 벗었다. 맨발로 계단을 올랐다. 꽃잎이 가득 뿌려진 자리. 붓다는 그 자리에서 금강경을 설했다고 한다. 나는 그 앞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불타는 마음, 불타는 삶, 그리고 불타는 세상. 어떡하면 그 불을 끌 수 있을까. 어디서, 어떤 물을, 얼마나 길어와서 부으면 그 불이 꺼질까. 붓다는 금강경을 설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상()이 아닐 때 여래를 보리라.” 쉽게 풀면 이렇게 바뀐다. “고집이 고집이 아닐 때 진실을 보리라.”

붓다는 묻는다. “네 마음의 불길이 언제 일어나는가? 너의 기대, 너의 잣대, 너의 바람, 너의 욕망에서 네 삶이 어긋나기 시작할 때 불길이 솟구치지 않나. 그러니 따져보라. 누가 그 불길에 장작을 공급하고 있는가. ‘내 마음이 불탄다, 내 삶이 불탄다며 괴로워하면서도, 계속해서 잣대를 고집하고, 끝없이 장작개비를 밀어넣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 붓다는 이렇게 묻는다. 결국 나의 고집이 내 삶을 태우고, 우리의 욕망이 세상을 태운다.

붓다는 29세에 출가, 6년 고행을 하고서 35세에 깨달음을 이루었다. 이후 45년간 인도 북부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이치를 설했다. 그 와중에 숱한 일들이 있었다. 붓다의 조국 카필라 왕국이 이웃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양어머니인 이모를 비롯해 부인과 아들이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붓다를 죽이려는 음모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붓다의 설법은 더 많은 인도인의 가슴을 뚫어주었다. 붓다는 생겨난 모든 것은 소멸하게 마련이라고 설했다. 붓다의 육신도 그랬다. 80세가 됐을 때 붓다는 낡은 수레는 가죽끈의 힘으로 간다. 여래의 몸도 마치 가죽끈의 힘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대장장이집 아들 춘다가 수행자들을 식사에 초청했다. 대접받은 버섯(혹은 돼지고기) 요리를 먹고서 80세의 붓다는 식중독에 걸렸다. 피와 함께 설사가 쏟아졌다. 위독한 상태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붓다는 오히려 춘다를 걱정했다. 이대로 숨을 거두면 사람들이 춘다 때문에 붓다가 돌아가셨다며 원망할 터였다. 춘다는 죄책감에 허우적거리며 고통 받을 게 뻔했다. 붓다는 제자 아난을 불러 이렇게 전하라고 했다. “춘다여, 여래가 그대의 공양을 마지막으로 들고서 열반에 든 것은 그대의 공덕이며 행운이다. 춘다여, 나는 이 말씀을 붓다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붓다에게는 아무런 원망이 없었다. 육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춘다의 마음을 챙겼다. 나는 거기서 붓다의 사랑을 읽는다. 그 사랑에는 잣대가 없다. 음식을 먹고 위독한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에게나 불타는 삶이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춘다에 대한 원망의 장작을 계속 집어넣으며 불길을 더 키우지 않았을까. 불길이 커질수록 우리의 고통도 덩달아 커질 줄 뻔히 알면서 말이다. 붓다는 달랐다. 그의 마음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나는 버스를 타고 쿠시나가르로 향했다. 식중독에 걸린 몸으로 고향을 향해 가던 붓다가 중간에서 숨을 거둔 곳이다. 쿠시나가르에는 열반당이 세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한가운데 붓다의 열반상이 누워 있었다. 순례객들은 열반상의 두 발에 손을 대며 기도를 했다.

열반 직전이었다. 붓다는 제자들을 불렀다. 붓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너희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자신의 육신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붓다는 이치를 설했다. ‘지금 나의 육신이 무너지듯이, 머지않아 너희의 육신도 무너진다. 생겨난 것은 모두 무너지게 돼 있다.’ 육신의 무너짐, 그게 이치인 줄 알면서도 우리는 붙든다. 집착한다. 고집을 부린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불이 붙는다. 붓다는 달랐다. 불이 붙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의 마음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치에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열반당의 한쪽 구석에 가서 앉았다. 눈을 감았다. 붓다의 마지막 유언이 떠올랐다. “부지런히 정진하라!” “ 쉼없이 나아가라!” 무슨 뜻일까. 적시라는 말이다. 자신을 이치에 흠뻑 적시라는 뜻이다.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 원망의 장작, 미움의 장작, 고집의 장작에 불이 붙지 않게끔 말이다. 그래서 자유롭게 가라고 말한다. 이치에 젖은 장작을 짊어지고 불타는 삶, 불타는 세상을 지나가라고 말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지금까지 20회에 걸쳐 글을 쓰신 중앙일보 백성호기자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훌륭하고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인도불교성지로 순례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수미산처럼 치솟았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