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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사성제 (四聖諦)

작성자
hhhh
작성일
2021-01-30 17:23
조회
78
 

사성제(四聖諦)



연기와 삼법인의 가르침은 세상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리를 구현하는 수행의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사성제이다. 

사성제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 부처님이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행한 첫 설법의 내용이기도하다. 사성제는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하도록, 부처님께서 연기법의 진리를 현실에 맞게 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네 가지 진리가 있다 무엇이 네 가지 진리인가? 이른바 괴로움의 진리,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진리, 괴로움의 진리,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에 대한 진리를 말한다.

사성제란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래서 이를 줄여서 고. 집. 멸. 도 사성제라고 한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두 가지씩 원인과 결과를 이루며,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대비를 설명하고 있다. 삼법인에서도 설명했듯이 인간은 생로병사의 고통속에 있다. 인간에게는 이 네 가지 고통 외에도 여러 가지 고통이 있다. 이것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현실이다. 이것이 고성제이다.

그러면 고통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집착에서 비롯된다.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한 것을 찾고, 자기 것이 본래 없는데도 헛되이 집착하기 때문에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 설명한 것이 집성제이다.

이 세상에 고통이 있다면, 고통 없는 세계도 있고 , 거기에 이르는 길도 있을 것이다. 멸성제는 고통의 원인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고통에서 벗어난 해탈, 열반의 경지가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멸성제이다.

그러면 고통의 원인을 없애고 열반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열반으로 가는 길은 여덟가지 가 있으니 바로 도성제인 팔정도가 그것이다.

 

고. 집. 멸. 도 사성제

1) 괴로움= 고

사성제의 첫 번째는 괴로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즉 고성제이다.

현실의 괴로움은 보통 4고ㆍ8고(四苦 八苦)로 분류한다. 생ㆍ노ㆍ병ㆍ사(生 老 病 死)라는 삶의 모든 과정에 대한 4가지 괴로움에 다른 4가지 괴로움, 즉 애별리 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를 합해서 8고라 한다.

삶을 받는 괴로움, 늙는 괴로움, 병드는 괴로움, 죽는 괴로움은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누구나 겪어야 하는 보편적인 괴 로움이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정든 환경을 떠나야 하는 괴로움, 싫은 사람을 만나야 하거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하는 괴로움, 원하는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괴로움, 마지막으로 5온은 나와 나의 것으로 집착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위와 같은 괴로움에 대한 여실한 인식이 사성제의 첫 번째 진리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괴로움을 늘 겪고 있 으면서 인간 존재의 실상을 여실하게 보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이 진리에 대해서 전적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사랑하 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미운 사람을 만나면 당장 괴롭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내 망각하고 지낸다.

불교 수행의 출발점은 괴로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인데, 고의 실상을 바로 보는 순간 고통을 여의고 안락함[離苦得樂]을 얻 을 수 있는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도 있고 전쟁 중에 상대를 알면 백전백승이 라는 말이 있듯이 고통을 여의고 안심입명을 얻기 위해서는 괴로움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한다.

괴로움을 두려워하 며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 괴로움을 직시해야 한다. 고통의 무게를 못이겨 삶을 포기하거나 자살하는 사 람들은 정말 헤어나오기 힘든 암흑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적진을 향 해 달리는 용맹스런 장수처럼 고통을 직면해야 한다. 당당하게 괴로움과 맞설 때 그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여 원인과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2) 괴로움의 원인= 집

사성제의 두 번째는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다. 즉 집성제이다.

집(集)이란 ‘함께 모여 일어난다[集起]’는 뜻이다. 무엇이 함께 모여 일어나는가?

인간의 근본 미혹으로 인한 욕망과 애착이 모여 괴로운 번뇌가 일어 난다. 이것을 한 마디로 ‘갈애(渴愛)’라 한다. 욕망의 갈증과 존재에 대한 애착이다.

이 갈애가 바로 괴로움의 원인인 것이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보기에 좋은 것, 듣기에 좋은 것, 좋은 향기, 좋은 맛, 감촉이 좋은 것만을 탐한다. 그 욕 망의 정도는 끊임이 없다. 하나를 충족시키면 둘을 요구하고 둘을 들어 주면 셋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것이 괴로움 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욕애(欲愛)’라고 한다.

좋은 것만을 탐닉하는 인간의 성향 이면에는 ‘나’라는 존재가 영원하여 좋은 것을 항상 향유하기를 바란다. 지금 이 목숨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생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 바로 이 생에 대한 갈애와 집착이 ‘유애(有愛)’이다.

이처럼 욕애와 유애를 추구하다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허무를 탐닉한다. 이것을 무유애 (無有愛)라 한다.

쾌락주의의 극치는 허무주의와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양극단에 치우친 태도는 항상 고통의 원인이 된다.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는 삶의 태도는 매우 적극적이며 역동적이다. 부처님은 최초의 설법 중에서 “최초의 진 리가 괴로움의 인식이고 괴로움의 원인을 여실히 관찰하고 인식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괴로움에서 벗어난 사 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앞에서 자살에 대해서 잠시 언급했듯이, 이 말을 듣고 어떤 이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카드 빚에 쪼들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동반자살한 가족, 부도를 내고 자살한 중소기업체 사장, 일등에서 이등으로 떨어졌다고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어느 학생, 이들은 모두 자살을 결행할 정도로 이 세계의 고통을 절감했을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고통을 경험하고 자살함으로써 고통을 벗어난 사람들인가?”

물론 이것은 전제가 잘못된 어리석은 질문이다. 자살한 사람들은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고통을 절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고 이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는 차라 리 죽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는 괴로움에 직면한 것이 아니라 도피한 것이며, 삶에 대한 태도가 너무 소극적이고 무기력했음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오죽 괴로웠으면 자살까지 했겠냐고 묻겠지만, 사실 그들은 괴로움에 빠져 버려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속에 함몰되어 버린 것이다. 괴로움에 대한 바른 인식과 괴로움의 원인을 관찰할 생각을 낸다는 것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삶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성제 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진리를 잘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다.

3) 괴로움의 소멸 = 멸

사성제 중에서 멸성제는 괴로움이 소멸된 상태, 즉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 또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모두 사라진 평온의 경지를 나타낸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소멸되었으니 괴로움도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괴로움이 없는 인생, 이는 이미 중생의 삶이 아니라 열반과 해탈을 성취한 성자의 삶이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병의 원 인을 정확히 진단하여 병을 모두 치료했으니 이제 더 이상 환자가 아니다.

다시 말해 고통스러운 병과 그 원인이 소멸되었다는 것은 삼법인에서 언급한 열반적정의 상태이며, 이 장의 마지막 에서 살펴 볼 12연기의 역관(逆觀)의 결과로 해탈의 경지를 말한다. 

‘모든 존재현상은 끊임없이 생멸하고[無常], 생 멸, 변화하는 현상들은 갈등과 갈애의 상태를 면치 못하며[苦], 이런 생멸하는 갈등과 갈애의 현상 이면에는 어떤 고정불변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無我]’라는 진리를 확실히 체험하면 바로 그 상태가 열반적정인 것이다. 

이렇게 괴로운 존재현상의 시작과 끝을 여실히 관찰하여 체득함으로써 해탈열반의 세계를 성취하게 된다. 즉 괴로 운 존재현상을 떠나 어떤 열반적정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여실하게 바로 보면 열반적정 이며 해탈이고, 잘못 보면 괴로움이고 번뇌이고 무명(無明)이다.

여기에 멸성제의 현실적이고도 실천적인 의미가 있다. 고뇌와 무지로 점철된 삶의 질곡이 따로 있고 해탈열반의 이 상세계는 저 멀리 존재한다면 고통의 삶을 극복하기 위한 수행은 불가능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너그러운 자비심과 공경으로 대하고, 좋은 말, 밝은 얼굴로 내 욕심을 접고 먼저 양보하며 남의 일을 같이 기뻐하고 상처를 안아주며, 감사하고 찬탄하며 모든 공덕을 함께 나누면, 바로 그 순간 괴롭고 힘든 고통의 삶이 지금 여기에 서 신나고 기쁨이 넘치는 수행의 삶으로 전환된다. 멸성제의 현실적 성취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다음에 살펴 볼 도성제(道聖諦) 즉, 8가지 바른 수행의 길이다.

4.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 = 도 => 팔정도

사성제 가운데 도성제, 즉 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는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 또는 8가지 수행방법[八正道]을 말한 다.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선정(正定)이 그것이다. 

 

(조계사 김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