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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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에서 (이봉주) : 2020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시

작성자
hhhh
작성일
2020-03-09 11:49
조회
752
 

폐사지에서  (이봉주)

 

부처가 떠난 자리는 석탑만 물음표처럼 남아 있다

귀부 등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득히 목탁소리 들리는 듯한데

 

천 년을, 이 땅에 새벽하늘을 연 것은

당간지주 둥근 허공 속에서 바람이 읊는 독경 소리였을 것이다

 

천 년을, 이 땅에 고요한 침묵을 깨운 것은

풍경처럼 흔들리다가

느티나무 옹이진 무릎 아래 떨어진 나뭇잎의 울음소리였을 것이다

 

붓다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설법 하였으니

여기 절집 한 칸 없어도 있는 것이겠다

 

그는 풀방석 위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으니

불좌대 위에 풀방석 하나 얹어 놓으면 그만이겠다

 

여기 천년을 피고 진 풀꽃들이

다 경전이겠다

 

옛 집이 나를 부르는 듯

문득 옛 절터가 나를 부르면

 

천 년 전 노승 발자국 아득한데

 

부처는 귀에 걸었던 염주 알 같은 생각들을

 

부도 속 깊게 묻어 놓고 적멸에 드셨는가

 

발자국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