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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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교리 산책 (목경찬) 31.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으로 보이네

작성자
hhhh
작성일
2026-05-09 22:56
조회
93
 

<31>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으로 보이네


[불교신문 2024.09.03.]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그렇게 본다’로 이해하였다. 여기서 ‘본다’는 말은 ‘인식한다’,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때 마음(心)은 ‘저장과 생성’의 뜻을 지니며, 조(造)는 ‘인식한다’, ‘이해한다’의 뜻이다. 앞에서 계속 살펴본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조금만 생각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

가령, 개 짖는 소리를 우리는 ‘멍멍’으로 듣고, 미국 사람은 ‘바우와우’로 듣는다. 우리는 기차 소리를 ‘칙칙폭폭’이라고 하는데, 미국 사람은 ‘추추’라고 한다. 원효 스님의 해골 물 이야기도 그렇고,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이야기인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으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로 보인다.’ 등이 그렇다.

멍멍 듣고자 하여 멍멍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다. 즉 나의 의지나 생각으로 멍멍 들리는 것이 아니다. 개는 멍멍 짖는다는 문화권에 사는 우리는 마음에 저장한 내용이 그렇게 드러난 것뿐이다. 이때 마음은 저장과 생성의 기능이 있다. 원효 스님의 마음에 해골 물은 더럽다는 정보가 있으므로 해골 물이라는 것을 안 순간 구역질을 한 것이다. 그 당시 ‘모르고 해골 물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었다면 다른 반응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내 앞에 펼쳐진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으로 조작하여 이해한 모습일 뿐이다. 만약 내 앞에 펼쳐진 것이 그 자체라면, 개 짖는 소리 또는 기차 소리는 누구에게나 멍멍 또는 칙칙폭폭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 따라 마음 작용으로 멍멍 또는 바우와우로, 칙칙폭폭 또는 추추로 드러난다. 지금 보이는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음의 분별 작용으로 드러난 현상일 뿐이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그렇게 본다’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개가 짖을 때 ‘멍멍’, ‘바우와우’는 내 마음에 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밖에 있는 개나 실제 개 짖는 소리는 어떻게 되는가. 그것을 마음이 만든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쉽게 말하면, 산과 바다를 마음이 만든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의 연유는 이렇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서 조(造)를 글자 그대로 ‘만든다’고 이해하면 일체(一切)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마음이 실제 개나 개 짖는 소리, 산과 바다를 만든다’고 한다면, 받아들이기 참으로 힘들다. 아니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불교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내가 인식하기 전의 세상(개, 실제 개 짖는 소리)도 또한 마음이 만든다고 본다. 쉽게 말하면, 산과 바다도 마음이 만든다. 마음을 떠나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다 마음이다. 만법유식(萬法唯識)이다.

유식을 전공한 필자도 이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반 상식으로 볼 때 말도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 누군가가 죽어도 이 세상은 그대로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사라져도 이 세상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나(마음)와 별도로 있다. 앞글에서 언급하였듯이 필자는 일체유심조를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그렇게 본다’로 여전히 이해하였다. 그런데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났다. ‘맞네, 모든 것은 마음이 실제로 만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