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미셀러니

불교 교리 산책 (목경찬) 30.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작성자
hhhh
작성일
2026-02-16 00:21
조회
208


<30>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불교신문 2024.08.23.]


필자는 불교동아리 활동에서부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뜻이 궁금하였다. 그 당시 일체유심조를 ‘생각하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접하였다. 그런데 그 뜻이 도통 와 닿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상의 일은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사회구조나 제도의 문제도 있는데, 그러한 뜻풀이는 모든 것을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과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측면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心)은 무엇일까.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이 ‘생각하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이라면, 부처님이 그렇게 존경받는 성인일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의문은 불교동아리 회원을 유식(唯識)을 전공하는 불교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이러한 고민 속에 접한 견해 중 하나가 전변설(轉變說)과 적취설(積聚說)이었다. 다시 간단하게 언급한다. 전변설은 절대자(브라흐만)가 세상을 만든다는 견해다. 적취설은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고 상주하는 개개의 요소(지, 수, 화, 풍, 허공, 득, 실, 고, 락, 생, 사, 영혼 등)가 모여 자아와 세계가 성립한다는 견해다. 이에 반해 부처님은 모든 것은 서로 관계하여 일어난다는 연기설을 말씀하셨다. 그런데 전변설과 일체유심조, 적취설과 오온설이 비슷하다는 의문을 버릴 수 없었다. 과연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름의 이해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썼다.

“이때 마음 작용과 그 드러난 것을 법(法)이라고 하게 된다. 즉, 법(法)이라는 것이 막연한 ‘우주 만물’, ‘삼라만상’, ‘일체 존재’라기보다는 마음 작용으로 드러난, 내 마음 앞에 펼쳐진, 나에게 파악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 ‘일체유심조’, ‘만법유식’도 마음이 이 세상 자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작용으로 인해 인식된 현상들이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원효스님이 처한 상황의 마음작용에 따라 맛있는 물로 여겨졌던 것이 해골물로 보였던 것이지, 원효스님이 실제 맛있는 물 그 자체를 만든 것도 아니고 해골물 그 자체를 만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 무렵 필자는 일체유심조를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그렇게 본다’로 이해하였다. ‘모든 것은 마음이 실제로 만든다’는 풀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생각에는 ‘독화살의 비유’<전유경(箭喩經)>라는 경전 내용도 한몫하였다. 말랑카존자는 ‘세상은 영원한가, 세상은 영원하지 않는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정신이 몸인가, 정신과 몸이 다른가, … ’ 가 궁금하였다. 그런데 부처님은 독화살의 비유를 들며 그러한 견해는 ‘의(義)가 아니며 또한 법(法)이 아니며 범행이 아니며 신통을 성취하지 못하며 평등한 도에 이르지 못하며 열반(涅槃)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는다’ 하며, 사성제(四聖諦)를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필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절대자가 세상을 만들든지, 요소가 모여 세상이 만들어지든지, 이 세상 자체에 중심을 두지 않고 내가 지금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중심을 두었다고 이해하였다. 그래서 일체유심조를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그렇게 본다’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필자의 사고는 ‘모든 것은 마음이 실제로 만든다’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