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미셀러니

불교 교리 산책 (목경찬) 29. 모든 것은 마음이 실제 만든다’는 뜻으로 확대

작성자
hhhh
작성일
2026-02-16 00:14
조회
296


<29>‘모든 것은 마음이 실제 만든다’는 뜻으로 확대


[불교신문 2024.08.09.]


일상생활에서 말장난이나 언어를 왜곡하여 사용하는 경우에 언어도단이라 한다. 그러나 언어도단의 원래 뜻은 그렇지 않다. 불교에서 궁극의 경지를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작용하는 곳이 사라졌다)이라고 한다. 깨달음의 경지는 모든 분별이 사라진 자리다.

우리는 보통 언어를 통해 분별하며 살아간다. 분별과 언어는 함께 한다. 그 분별은 마음에 저장되었던 정보를 통해 진행된다. 저장된 그 정보를 명언종자(名言種子)라 한다. 그 정보는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한 세상’에서 얻는 것으로, 객관의 측면과 주관의 측면이 함께 있다. 객관의 측면이든 주관의 측면이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한 분별은 절대적이지 않다. 진여, 깨달음의 세계는 한계를 지닌 언어로써 분별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작용이 사라진 자리다. 언어도단 심행처멸이다.

그런데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가르침을 전할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의 자비로 팔만사천법문이 등장한다. 언어는 한계가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위대한 부처님 가르침이라도 그것을 접하는 우리는 우리식대로 이해한다. 그 법문을 접하는 우리는 각각의 입장에서 자기의 언어로 분별하며 이해한다. 이런 이유로 부처님은 열반하실 무렵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따라서 경전을 접하는 우리는 늘 하심이 필요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살펴보는 가운데, 언어와 분별을 언급한 이유도 그렇다. 일체유심조라는 하나의 가르침에 이해는 다양하다. 우선 ‘일체(一切)’, ‘심(心)’, ‘조(造)’를 어떤 의미로 이해하는가에 따라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일체유심조를 ‘마음먹기 나름’, ‘생각하기 나름’의 뜻으로 흔히 알고 있다. 이때 마음(心)은 의지나 생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세상은 대부분 내 의지나 생각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이러한 풀이를 잘못 이해하면, 혹은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혹은 모든 것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을 앞서 살펴보았다.

둘째,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그렇게 본다’로 풀이한다. ‘본다’는 말은 ‘인식한다’, ‘이해한다’는 뜻이다. 이때 마음(心)은 ‘저장과 생성’의 뜻을 지니며, 조(造)는 ‘인식한다’, ‘이해한다’의 뜻이다. 이 또한 앞에서 계속하여 살펴본 부분이다.

가령, 개 짖는 소리를 우리는 ‘멍멍’으로 듣고, 미국 사람은 ‘바우와우’로 듣는다. 나는 수건으로 여겨 얼굴을 닦았는데, 친구는 걸레라고 하였다. 원효스님의 해골 물 이야기와 무학대사와 이성계의 이야기인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으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로 보인다.’ 등이 그렇다.

셋째, ‘모든 것은 마음이 실제로 만든다’는 뜻으로 확대된다. 일체(一切)의 범위가 확대된 이해다. 이때 마음(心)은 ‘저장과 생성’의 뜻으로, 제8식이다. 조(造)는 실제로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셋째 견해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어쩌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다. 그럼 불교 교리 산책에 나서며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