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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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교리 산책 (목경찬) 23. 열반은 장애를 떠나면서 진여가 드러난 것이다.

작성자
hhhh
작성일
2025-11-24 13:49
조회
75


<23> 열반은 장애를 떠나면서 진여가 드러난 것이다


[불교신문 2024.06.25.]


열반은 없다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지니, 열반이 생겨났다면 생겨난 열반도 사라지게 된다. 열반은 본래 자성 청정하다. 그런데 손님격인 장애(객진번뇌)가 덮고서 드러나지 않게 하다가 수행으로 장애를 끊어 청정한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이를 ‘열반을 얻었다’ 말할 뿐이다. 즉 열반은 별도로 생겨나지 않았고 장애를 떠나면서 진여(眞如)가 드러난 것이다. 열반의 체는 청정법계인 진여다.

열반의 체는 진여로서 하나이지만, 네 종류가 있다. 본래자성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涅槃),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이다. 열반은 범어 니르바나의 음역이다. ‘고요하다’는 뜻이다. 적멸(寂滅), 적(寂) 등은 의역이다.

첫째, 본래자성청정열반이다. 이는 진여 도리를 말한다.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등으로 표현한다. 중생의 참된 성품이기 때문에 일체 중생에게 평등하게 공통으로 있다. 손님격인 더러운 장애에 가려 있지만, 본래 깨끗하고 헤아릴 수 없는 미묘 공덕을 갖추고 무생무멸(無生無滅)하여 고요하고 맑음이 허공과 같다. 그 성품이 본래 고요하다. 그러므로 열반이라 이름한다. 분별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참된 성자만이 깨닫는다. 그런데 중생은 자신에게 갖추어진 것을 모르고 밖으로만 찾아다닌다. 이에 대승불교에서는 불성, 여래장, 일승(一乘) 등의 가르침이 있다.

둘째, 유여의열반은 진여가 번뇌장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번뇌장은 나에 대한 집착(我執)으로 함께 생겨난 장애다. 열반을 방해한다. 따라서 아공(我空)을 깨달으면 번뇌장이 끊어진다. 번뇌장이 끊어짐으로 해탈(열반)을 얻는다. 이때 ‘남은 의지(여의)’는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보통 몸을 말하지만, 혹은 그 본뜻은 마음 작용(분별)으로 보기도 한다. 비록 ‘남은 의지(여의)’는 아직 멸하지 않았지만, 번뇌장은 영원히 고요하므로 열반이라 이름한다.

셋째, 무여의열반이다. 이는 곧 진여로서 생사의 괴로움을 뛰어넘는다. 번뇌는 이미 끊어졌고 ‘남은 의지’도 사라져 모든 괴로움이 고요하므로 열반이라 이름한다. 생사를 보통 태어남과 죽음으로 보지만, 그 본뜻은 마음 작용의 생멸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 생사의 괴로움은 아라한에 해당한다. 부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고를 떠난 분이다.

넷째, 무주처열반이다. 이는 곧 진여로서 소지장(所知障)을 뛰어넘는다. 앞에서 번뇌장은 나에 대한 집착(아집)으로 함께 생겨난 장애라면, 소지장은 세상에 대한 집착[법집(法執)]으로 함께 생겨난 장애다. 소지는 진여를 말한다. 보리(깨달음)를 방해한다. 따라서 법공(法空)을 깨달으면 소지장이 끊어진다. 소지장이 끊어짐으로 대보리(아뇩다라삼약삼보리)를 얻는다. 자비와 지혜가 생겨난다. 그리하여 생사에도 열반에도 머물지 않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 미래가 다하도록 작용을 일으키더라도 항상 고요하므로 열반이라 이름한다. 즉 자비와 지혜의 작용을 일으키지만, 그 체성은 항상 고요하다.

중생에게는 본래자성청정열반(불성) 하나가 있다. 아라한에게는 무주처열반을 제외한 나머지 셋이 있다. 오직 부처님만 네 가지 열반을 모두 갖추었다. 중생 제도를 위해 몸을 나투신 화신(化身)이 유여의열반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