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무아(諸法無我). 여기서 법(法), 아(我) 등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여러 풀이가 가능하다. 다시 강조하자면, 용어 하나에 여러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다. 경전 구절에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용어라도 다른 뜻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용어라도 같은 뜻일 수 있다. 따라서 용어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경전 말씀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제법무아를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고 간단하게 풀이한다. 이때 법(法)은 오늘날 ‘세상’, ‘존재’, ‘사물’, ‘삼라만상’, ‘인식 현상’ 등으로 번역한다. 딱 떨어지는 번역은 아니다. 일단 이때 법은 그냥 쉽게 나에게 펼쳐진 삼라만상, 사물 등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我)는 자성, 실체로 이해한다. 이때 제법무아는 삼라만상, 인식 현상(諸法)은 나의 집착으로 그렇게 본 것일 뿐 고정된 실체는 없다(無我)는 의미다.
다음, 제법무아를 ‘모든 것에는 나라 할 것이 없다’고 풀이한다. 이때 아(我)는 나, 너 할 때의 나다.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하고자 하는 가르침에 따른 풀이다. <잡아함경>에는 “색(色)은 항상 함이 없다. 항상 함이 없는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내(我)가 아니며, 내가 아니면 또한 나의 것(我所)이 아니다. … 수(受), 상(想), 행(行), 식(識)도 또한 … ”, “색에는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색에 내가 있다면 색에는 응당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한 색에 대해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거나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수 없을 것이다” 등의 구절이 있다.
또는 제법무아를 ‘나(我)라는 실체(我)도 없고 삼라만상(法)이라는 실체(我)도 없다’고 풀이한다. 첫 번째 풀이와 같지만, 법(法)에는 나, 너 할 때의 아(我)도 포함됨을 나타낸다. 첫 번째처럼 제법무아를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라고 했을 때, ‘모든 것’에 나와 세상을 모두 포함한다. 나와 세상을 각각 아(我)와 법(法)이라 구분한다. 그런데 넓은 의미에서 법은 나(我)와 세상(法)을 모두 포함한다. 이때 무아에서 아(我)는 자성, 실체의 뜻으로 법에 포함되는 아(我)와 다른 의미다.
마지막 풀이를 좀 더 보자. 우리는 보는 내가 있고 보이는 세상이 있다고 여긴다. 보는 나를 아(我), 보이는 세상을 법(法)이라 한다. 보는 내가 이렇게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집(我執), 보이는 세상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것은 법집(法執)이다. 그런데 나라고 여기는 나는 실체가 없고,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세상은 실체가 없다. 이를 각각 아공(我空), 법공(法空) 또는 인무아(人無我), 법무아(法無我)라 한다. 이를 함께 언급한 가르침이 제법무아다.
그런데 공, 무아라는 가르침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다. 내 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있는데 전혀 없다고 부정하기는 그렇지 않은가. 밤에 꾸는 꿈은 있는가, 없는가. 꿈으로서는 있지만, 생시는 아니다. 꿈을 생시라고 여긴다면 착각이다. 공, 무아의 가르침도 그러하다. 내가 그렇게 여기는(인식하는, 분별하는) 나와 세상은 인연화합으로 그렇게 드러났을 뿐 실제 그렇게 있지 않다. 분별로 드러난 나와 세상이 실제 그렇게 있다고 여기는 것이 아집, 법집이다. 그런데 그 집착은 매우 강하여 우리는 집착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