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스님을 말하면 대부분 해골 물이 생각난다. 간밤에 목이 말라서 손에 잡히는 바가지에 담긴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가지가 아니라 해골이었다. 시원하게 마셨던 물이 바로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스님은 구역질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왜 원효스님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셨다는 사실을 안 순간 구역질을 하였을까? ‘아니, 내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셨다니. 해골에 담긴 물은 더러우니 구역질해야지.’라고 의지를 일으켜서 구역질하지는 않았다. 사실을 안 순간 자동으로 바로 구역질하였다. 원효스님 마음에는 해골에 담긴 물은 더럽다는 정보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 당시 해골에 담긴 물을 모르고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원효스님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셨다는 사실을 안 순간 구역질이 아니라 환호하였을 것이다. 물론 무병장수처럼 일반적이지 않을 때는 의지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처럼 여기서 마음은 의지라는 뜻보다는 저장과 생성이라는 뜻이 강하다. 원효스님과 해골 물 하면 일체유심조를 언급하는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단순하게 ‘마음먹기 나름’,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뜻이 아니다. ‘마음먹기 나름’에서 ‘마음’은 보통 의지, 생각의 뜻으로 이해한다. 원효스님은 그러한 의지나 생각이 일어나서 구역질한 것이 아니다. ‘일체유심조’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다’이다. 이때 마음[心]은 저장과 생성의 뜻이 강하다. 해골 물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자 바로 해골 물은 더럽다는 정보가 마음에서 드러나서 구역질한 것이다.
나에게 펼쳐진 삼라만상인 법은 인연화합으로 생겨난다. 인연생법(因緣生法)이다. 여기서 인(因)은 직접적 원인이고, 연(緣)은 간접적 조건이다. 가령, 꽃의 씨앗은 인이고, 흙, 물, 거름, 햇빛 등은 연이다. 이러한 인과 연이 함께하여 꽃이 핀다. 인만 있어도, 연만 있어도 꽃은 피지 않는다. 해골 물을 마셨다는 사실이 연(緣)이라면, 해골 물은 더럽다는 마음에 저장된 정보는 인(因)이다. 이러한 인과 연이 화합하여 구역질인 과(果)로 나타났다. 구역질인 과는 새로운 정보로서 마음에 저장된다. 이후 원효스님은 해골을 보아도 구역질했던 그 순간이 생각났을지도 모른다. 이때 해골을 본 것은 연(緣)이고, 마음에 저장된 구역질 사건은 인(因)이다. 만약 그 순간이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면 그것은 과(果)다. 그때쯤이면 원효스님은 무애자재한 도인이었으니 마음에 동요가 없었으리라 하여 미소를 지었다고 상상해 보았다.
우리의 모든 행위[업(業)]는 과(果)로서 드러나지만, 이 과(果)는 인(因)으로서 마음에 저장된다. 이 마음에 저장된 인(因)으로 다음 찰나의 세상을 펼치고 인식한다. 내연기(內緣起)라는 말이 생소하다는 의견이 있길래 일반적으로 아는 마음[心]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부처님 가르침에 다가가고자 하였다. 내연기는 마음 작용 간의 관계이며, 결국 마음 작용으로 세상을 펼치고 인식한다. 그런데 마음 하면 의지 또는 생각으로만 이해하기에 마음은 저장과 생성이 기능이 있으며, 모든 것이 마음에 인(因)으로 저장된다고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