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미셀러니

주력수행 (이채윤)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12-01 01:02
조회
1002
주력수행   (이채윤)

 

누구나 살면서 겪는 마음의 굴곡이 있을 것인데,

나 또한 나의 입장에서는 깊은 마음의 굴곡들을 겪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했는데,

우연히 광명진언 책을 구해서 읽고 책에서 본 대로 수행을 했다.

어느 날 아이가 병이 났고,

대학병원에서 차도가 없어 근거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가 밀려왔을 때, 집 근처 사찰의 스님께 무조건 매달렸다.

 

스님께서 기도를 올려주겠다 하시고

병원을 추천해 주셔서 옮긴 뒤 아이가 나았다.

그럼에도 마음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던 중,

새벽기도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벽 4시에 일어나 30분 뒤에 시작하는 예불에 참석하였다.

새로 오신 기도스님은 ‘대불정능엄신주’ 기도를 하겠다며

동참자는 외우라고 하셨다.

외운 것을 확인하신 스님은 입으로 하지 말고

생각으로 능엄주를 하라고 하셨는데, 어려운 일이었다.

요령 없이 밀어붙여 결국 상기가 되었고 머리에 열이 올라 고생을 했다.

성철 스님 문도사찰을 찾아가

스님께 성철 스님께서 예전에 상기가 된 스님께 알려주었다는

열 내리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조금씩 호전되어 나았다.

 

절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능엄신주를 외웠으니

백련암으로 가서 삼천배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스님도 삼천배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시며 꼭 가보라고 말씀하셨고,

이후 기도스님은 다른 사찰로 옮겨 가게 되셨다.

길치였고 절도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스님의 한 마디에 의지하여 그저 백련암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은 도통 알 수 없었고 많이 헤매어 힘들게 백련암에 도착했고

이내 삼천배를 시작했다.

삼천배를 하면서 내내 기차 안에서 읽은

‘성철 스님 어록’ 중 한 구절을 떠올렸다.

“절 하다 병신 된 사람 없고, 절 하다 죽은 사람 없다.”

 

그 한 마디를 의지처 삼아 죽겠다 싶어도,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도

그저 절을 하고 또 절을 했다.

잠깐의 쉬는 시간 동안은

온 몸에 한기가 들어 오들오들 떨면서 힘들었고,

절을 할 땐 그저 힘들었다.

다 포기하고 말자는 생각이 올라왔을 때,

집에 있는 아이를 생각했다.

집을 나오는 길에 또 열이 오르는 걸 눈으로 보고도

짐을 싸 들고 나왔던 백련암이었다.

어떻게 나왔고 얼마나 힘들게 찾아온 백련암인데,

이대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내 인생에 다시는 백련암에 올 일도 없고 다시는 삼천배 할 일도 없는데,

오늘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몸은 아프고,

몸도 마음도 힘들고 외로운 삼천배였다.

2500배 후 몸과 마음으로 누워서 끙끙거릴 때,

마지막 500배를 시작한다는 소리와 함께

“여기까지 왔는데 불명을 받아야지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에게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밀어붙인 삼천배를 회향하고,

새벽에 불명을 받았는데 ‘정진월(精進月)’이었다.

다시는 삼천배를 하지 말아야지,

다시는 백련암에 오지 말아야지 하면서

절을 한 것에 대한 훈계와 지침을 받은 기분이었다.

삼천배를 회향하고 걸어 내려오는데 쓰지 않은 근육을 쓴 것에 대한

약간의 통증만 있었을 뿐 멀쩡했다.

정말 절하다 죽지도 않고 절하다 병신이 되지도 않는구나 생각했다.

 

집에서 혼자 능엄주를 독송하고 묵독을 하다가,

인터넷에서 부산 옥천사의 ‘대불정능엄신주’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경기도에서 부산 옥천사를 찾아가기 위해 무작정 또 길을 나섰다.

옥천사에서는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능엄주 108독 철야정진을 하며,

철야정진에 앞서 백졸 스님께서 법문을 하신다.

108독 철야정진도 하고 싶고, 백졸 스님의 법문도 듣고 싶었다.

법문 후 스님께 일과를 받기 위해 독대를 했는데,

스님께서는 “내생이 있어”라고 말씀하시며 대화의 포문을 여셨다.

‘내생’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나는 문맥 속에서

그것이 다음 생을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내생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내생’을 알기 전과 후, 믿기 전과 후의 삶은 분명 다른 것이었다.

 

스님께서 능엄주 주력수행자들과 함께 낭독하길 좋아하시는 구절이다.

마음대지가 텅 빈다는 것은

마음에 편견, 착각, 유무, 선악 등이 없어진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능엄주와 같이 긴 주를 외우는 어려운 기도를 하는 것은

이러한 집착, 편견 등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어떠한 편견이나 착각이 없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정신능력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인공위성에서 360도로 지구를 보는 차원이라고 말씀하셨다.

 

능엄주 정진을 하면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어려운 공부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스님께서는 늘 강조하고 계신다.

 

“마음에 착각이 없는 자리에는 아무리 퍼주어도 닳지 않는

능력이 있는데, 남에게 주는 게 우리의 능력”이라는 말씀,

“재산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보시가 있는데,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과 훈훈한 마음으로,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보시”라는 가르침,

“일과를 열심히 하는 것과 조금만 도와주면 살 수 있는데

모르는 척 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 공양”이라는 가르침,

“현생에서 내가 인격자가 되어 내가 나타남으로 인해서

모두가 편안해 지는 것도 공양”이라는 가르침….

 

내가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갖가지 일들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잃고 헤맬 때,

언제나 나의 의지처이고 세상을 항해하는 나의 나침반이며,

나의 반성문이다.

‘돈황본 육조단경’의 ‘21.수행’은 옥천사 지정곡이다.

스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늘 마음에 담아두라고 당부하고 계신다.

“남의 잘못은 나의 죄과요, 나의 잘못은 스스로 죄 있음이니,

오직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번뇌를 쳐부수어 버리는 도다.”

이것을 떠올리면 간혹 일상에서 생각 없이 올라오는

원망과 미움을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또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세상과 맞서고자 할 때,

혹은 이미 저질렀을 때 스스로를 꾸짖고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능엄주는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한다.

지하철이나 차를 탈 때, 걸어 다닐 때, 여유가 있을 때

나의 마음은 능엄주로 돌아가고, 집중하기 위해 노력한다.

집중하는 그 자리에서 편견이 사라지고

사념이 정리되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행에는 기복이 있고 집중하기는 언제나 어렵다.

집중해야지 하고 수행을 하면

어느 순간 마음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러한 부끄러운 수행 속에서도 나는 현재진행형으로

변해가는 중이고, 사람들에게 차분하다는 말을 곧잘 듣곤 한다.

어떠한 사건 속에서 그 속에 함몰되지 않고,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면

상대의 입장이 저절로 보일 때도 있고,

미워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음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지나친 사랑에 대한 경계를 능엄주 속에서 배웠다.

수행의 인연을 잡게 해 준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 또한 집착이며,

이는 또 다른 번뇌의 씨앗이라는 것을

능엄주 수행을 통해 어렵게 배웠다.

 

이 글을 쓰며 한없이 부끄럽고 숨고 싶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고 실천하지 못하며 언행이 일치하지 못한다.

정해진 일과를 핑계 없이 묵묵히 해내고, 차분히 앉아

고요 속에 능엄주와 함께 하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인연과 수행의 흐름 속에서

동국대 명상심리상담 석사 전공을 시작해

공부를 더욱 깊이 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부끄럽고 깊이 감사하다.

글로써 나를 돌아보고 그간의 배움을 정리하고

부끄러워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초심과 열정을 어느 순간 잊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부끄럽다.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소중히 마음에 간직하고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겠다는 결심을 한다.

또한 “세상을 상담해.” 이 말씀을 마음에 담아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2018.10.03.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주력수행  이채윤

법보신문 (http://www.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