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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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과의 인연 : 내 인생의 등대 (김선근)

작성자
hhhh
작성일
2018-12-04 16:45
조회
977

 내 인생의 등대 (김선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나 한번쯤 진솔하게 던져보는 의문일 것이다. 나는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보람된 만남과 허무한 만남처럼, 인생에는 여러 가지 만남이 있다. 이 가운데 보람된 만남을 통해 우리는 삶의 환희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다운 친구를 만나야 하고, 진실한 애인을 만나야 한다. 또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오롯한 진리를 만나야 한다. 이것은 우리 삶이 기쁘고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가 아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나에게 이런 의미 있는 만남은 내가 대학 신입생 때 이루어졌다. 바로 성철 큰 스님을 만난 것이다. 1965년 8월, 그 여름에 나는 방학을 맞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구도회원들과 함께 선지식을 친견하는 구도순례 법회 중이었다. 그 마지막 일정이 바로 큰스님을 친견하는 법회였다. 그런데 우리가 큰스님을 친견하는 데는 조건이 따랐다. 부처님께 3000배를 올리는 일이었다. 선지식 친견법회를 이미 10여일 째 진행해오던 터라 우리는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큰스님을 친견하고, 큰스님의 법력으로 부처님의 지견을 체득하리라는 원력을 세우고 절을 시작하였다. 오후1시부터 저녁8시30분경까지, 무려 일곱시간반동안 3000배를 하였다. 8월의 맹렬한 무더위 속에, 평소 절하는 데 익숙하지 않던 초보 수행자들이 3000배를 한다는 것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얼마나 힘든지 몰랐기에 겁 없이 시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절하는 도중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몇차례 졸도를 하는 이들이 속출하였다. 도무지 끝날것 같지 않던 3000배였다. 그러나 끝을 보고 말리라는 오기 때문이었는지 젊은 혈기 덕분이었는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런 우리가 기특하였는지 큰스님께서는 원주 스님에게 큰 양동이에 미숫가루를 타 가지고 오게 하시더니, 손수 한 그릇씩 떠주시며 우리를 격려해주셨다.

3000배 정진 중에 도를 체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귀한 길인가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도를 체득한다는 것은 ‘어머니나 아버지나 어느 친척이 주는 이익 보다 잘 인도된 마음이 우리에게 주는 이익이 더욱 크니라’라는 <법구경>의 교설처럼 인생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높은 이치를 모르고 사는 백년 보다는 가장 높은 이치를 알고 사는 하루가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자들은 도를 체득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당시 내가 듣기로, 큰스님은 젊은 수행자 시절, 도를 체득하기 위하여 성전암에서 10년간 장좌불와를 하셨다고 한다. 나는 3000배 정진도 힘들어서 세 번의 졸도 끝에 겨우 절을 마쳤는데, 스님은 10년씩이나 눕지 않고 앉은 채로 정진하셨다니 어찌 범인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

구도순례법회 3000배의 공덕으로 1966년 1월8일부터 김룡사에서 개최된 50일간 안거정진에 동참할 수 있었다. 거기다 같은 해 하안거에는 20일간 큰스님의 중도법문을 듣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당시 하안거 때, 큰스님의 법문은 <반야심경>으로 시작하여 <육조단경><금강경><신심명><중도가> 등으로 이어졌다.

나는 큰스님의 법문을 통하여, ‘모든 자유 가운데 해탈이 제일이고, 모든 사람 가운데 명안자(明眼者)가 제일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태양은 낮에 빛나고, 달은 밤에 빛나고, 장군은 갑옷에서 빛나고, 성직자는 명상에 빛난다, 그러나 깨친 자는 그 위광에 의해서 밤낮으로 빛난다’라는 부처님 교설로 논증된다.

당시에 들었던 법문은 내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큰스님을 내 인생의 등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큰스님께서 입적하실 때까지 인생의 의문과 난관에 직면할 때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스님을 찾아뵙고 가르침과 지도를 받았다. 큰스님으로부터 받은 법은(法恩)을 마음에 새기며 일주일간 3000배 정진도 무사히 마쳤다. 그때의 3000배 정진은 살면서 크고 작은 좌절을 겪거나 답답한 일이 생겼을 때 이를 극복하는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매일 아침 108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학자로서의 마음다짐이자 수행자로서의 작은 수행 실천이다.

큰스님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진리탐구에 대한 올곧은 수행자’로서의 삶이다. 구도자로서 정신은 스님의 출가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하늘 넘친 큰 일들은 붉은 하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 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이런 깨달음을 향한 구도열로 스님은 1955년 교단 정화후 초대 해인사 주지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시고,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으로 옮겨 철망을 치고 10여년간 동구불출 하는 용맹정진으로 구도자의 참모습을 보여주셨다.

<예불대참회문>에서 “제가 이제 발심하여 예배하옴은 제 스스로 복 얻거나 천상 나거나 성문 연각 보살지위 구함 아니요, 오직오직 최상승을 의지하옵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냄이오이다. 원하옵나니 시방세계 모든 중생이 모두 함께 무상보리 얻어지이다”라는 원과 같이, 스님은 부처의 경지를 체현하기 위하여 정진불퇴의 올곧은 수행자로서 모범을 보이셨다. 이런 수행의 철저한 신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성철 큰스님께서는 내게 가장 소중한, 수행자로서의 삶에 대한 지도를 해주셨다. 이런 큰스님의 영향으로 나는 전공에 대해 초지일관하는 자세와 백련천마의 노력으로 학문을 이루겠다는 원을 세우게 되었다.

나의 법명은 ‘보리’이다. 보리라는 법명은 큰스님과 둘도 없이 절친하셨던 청담스님께서 1965년 지어주신 것이다. 어느 해 방학 무렵, 큰 스님은 나의 법명을 부르시면서 “보리가 왔나, 쌀이 왔다, 콩이 왔냐?”하시며 선문답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보리가 이렇게 왔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랬더니 “법명답게 살려면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서 참선을 해야 육체의 눈에서 지혜의 눈이 열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그리고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마다 ‘스스로 안목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두 눈을 바로 뜨는 수행을 하라’고 당부하셨다.

대학을 마치고 군법사로 임관하여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매년 정기적으로 수련회를 열어 생도들과 함께 큰스님을 찾아뵙고 가르침과 지도를 받았다.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순수함을 좋아하셨던 큰스님은 사진도 함께 찍어주고 생도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셨는데 새삼 그 때가 그리워진다.

‘모든 형상은 다 변화하는 것이다. 모든 형상을 보되 인연의 법칙에 의해 잠시 머무는 것으로, 참된 실상이 아닌 것으로 직관한다면 곧 진리를 보고 여래를 본다’ 큰스님께서 즐겨 인용하시던 글귀로 <금강경>의 제일 사구게이다. 나는 지금까지 인생의 이치나 일에 막힘이 있을 때 이 사구게를 즐겨 염송한다. 이 사구게는 ‘땅에서 엎어진 자가 땅을 딛고 일어서는 것’과 같이 실의와 역경을 지혜와 복덕으로 쌓는 계기로 삼게 하는 내 인생의 지침과도 같은 경구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이 경구를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큰스님께 여쭈었더니 큰스님은 일상일과로 백팔참회를 하라고 교시하셨다. 큰스님께서는 ‘과거 신∙구∙의 삼업을 지은 업장들, 잘못 보고 트집 잡고 비방도 하고 아(我)와 법에 집착하여 망견을 내던 모든 업장을 남김없이 참회해야 공부하기가 수월하다’며 백팔참회를 실천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셨다. 큰스님의 자비스런 가르침의 은덕으로 나는 수업수생의 삶에서 수의왕생의 삶을 사는 인생관을 확립할 수 있었다.

나는 우리의 생명을 ‘불성생명’이라고 정의한다. ‘불성생명’이란 형이상학적으로 영원 편재하는 법신 생명이며, 인식론적으로 태양광명보다 더 밝고 빛나는 반야 생명이며, 윤리적으로 최고 환희의 열반 생명이다. 우리 자신이 ‘불성생명’이라는 것을 자각하면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보게 되고 부처님께 불공하는 마음으로 행동하게 된다. 내가 성취하려고 원하는 것, 지금까지 애써 온 모든 것은 ‘불성생명’을 실현하는 일이다. 나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살아 움직이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을 가지도록 나를 가르치고 깨우쳐주신 큰스님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살고 있다.

중국 근대의 왕양명은 ‘아는 것은 행하는 것의 시초요, 행하는 것은 아는 것의 완성이다’라고 했다. 나도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큰스님께 받은 법을 보은하는 마음으로 ‘불성생명의 인생관’을 전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자 발원해 본다.

 

(도서출판  :  아름다운 인연사)